활발한 정상외교로 다가가야
이 시점에서 향후 한국의 대중동 외교에 관한 여러 전략이 모색될 수 있고, 실제로 다양한 아이디어와 구상이 탐색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동 외교를 활성화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아이디어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필수적인 동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상외교이다.
중동 아랍지역은 이른바 서구에서 말하는 ‘제도화’된 국가들이 아니다. 즉 민주주의 선거기제에 의한 정권 교체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여전히 왕정이 존재하고 있으며 공화정 국가에서도 권위주의 일인 지배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단순히 정치적 저발전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아랍지역의 독특한 전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중동 아랍지역의 대표적 특성으로 유목문화에서 발원한 ‘부족중심주의(Assabiyyah·아사비야)’를 들 수 있다. 이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층위가 바로 부족 단위의 혈연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혈연 공동체에서 의사 결정은 가장 높은 어른의 무한책임 아래 이뤄진다. 이른바 족장국가 전통(Sheikhdom·셰이크돔)이다. 과거 유목 시절 오아시스를 찾아 광야를 나설 때 혜안을 가진 부족 어른의 지혜에 의존하던 관습에서 유래한다. 이 전통은 국가로까지 확대됐고, 비단 걸프 왕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공화정 국가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가부장적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인맥과 비공식적 관계가 중시된다.
여기에 이슬람의 통전적 일체성(tawhid·타휘드)이 결합된다.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것이며, 현재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절대자 알라의 뜻을 반영하고 이루어 나가는 대리자로 규정된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지도자들은 초월적 권위와 세속적 권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외교는 정밀한 국가이익의 분석과 이해득실 산출을 근거로 진행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중동 외교의 특수성은 그러한 계산을 넘어서는 ‘인간적 신뢰와 친밀감’ 변수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향후 대중동 외교는 활발한 정상 대면외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한 번이라도 더 포옹할 때, 무형의 친근감이 생겨나며 이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동 외교의 특성이다.
아랍 지도자들도 실용 중시
최근 걸프 아랍지역을 중심으로 부상하는 2세대 지도자들은 새로운 세계관과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 지도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며 인근 국가에도 이런 분위기가 전파되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의 교의나 부족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실용적인 노선을 과감히 채택한다.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루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감한 개혁개방과 국가 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석유고갈시대가 도래해도 지속 가능한 부가가치 창출 산업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 새 정부 역시 글로벌 코리아 실용외교 정책 기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중동 새 지도자들과의 정상 외교가 바로 대중동 외교의 시발점이자 축이 되어야 한다. 자주, 깊이 만나야 한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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