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기업은행 서소문 지점의 방각(27·여) 씨와 구로구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의 김미홍(26·여) 씨가 그 주인공.
○ 120 대 1 경쟁 뚫고 당당히 입사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태어난 방 씨는 토익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 대학 졸업 후 미국이나 프랑스로 유학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유학을 가더라도 6개월가량 한국어를 배운 뒤 가라”고 권해 4년 전 한국으로 왔다. 건국대에서 1년가량 어학코스를 밟은 후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에서 직장을 잡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지난해 상반기 120 대 1의 경쟁을 뚫고 중견행원으로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한국어는 약간 서툴지만 중국어와 영어 실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무난히 합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서소문 지점에서 일한 방 씨는 “중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은행원이 있다는 소문이 나 인근 영어학원의 외국인 강사들이나 중국인 유학생들이 우리 지점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방 씨는 “막상 한국에 오니 피 속에 흐르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민족성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투가 약간 달라 겪은 가슴 아픈 경험도 털어놨다.
신용카드 가입 서류에 나온 정보를 확인하려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사기 치려고 전화한 것 아니냐” “은행 직원이 맞느냐”며 지점장을 바꾸라고 했다는 것. 그 고객이 결국 별 이유 없이 카드를 해약한 것을 알고 방 씨는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방 씨는 “앞으로 교포들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 동포 고생하는 모습 마음 아파”
지난해 12월부터 외환은행 대림역 지점에서 근무하는 김미홍 씨는 구로구 구로동이나 가리봉동의 교포 및 중국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헤이룽장(黑龍江) 성 출신으로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에서 대학을 졸업한 김 씨는 매일 2∼3시간밖에 안 자며 공부해 2005년 30 대 1의 경쟁을 뚫고 외환은행 현지 지점에 입행했다.
“일제 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온 할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하셨죠. 한국계 은행에 들어갔다고 온 동네에 자랑을 하셨어요. 기회가 되면 한국에 꼭 같이 오자고도 하셨는데….”
김 씨는 3년 동안 현지에서 일한 후 우수 사원으로 선정돼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난해 7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 씨가 그토록 원해서 왔지만 한국 생활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천 화재사고에서처럼 위험한 일에 종사하며 손톱이 빠질 정도로 일하는 동포가 많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 씨는 “지난달 한국을 찾은 부모님과 함께 설 연휴에 할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지역을 찾아갈 계획이라 설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사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