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호 사무총장 등 친이 측은 “박근혜 전 대표도 모든 문제를 당헌 당규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해 왔다. 부정부패를 끊겠다고 당헌 당규를 만들어 놓고 특정인이 결부됐다고 이제 와서 바꾼다면 국민의 마음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속내야 무엇이든 맞는 말이다.
그러자 당사자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16, 17대 총선에서 두 번이나 당 공천심사와 지역구민들의 심판을 통과했는데, 왜 10년 전 일을 지금 문제 삼느냐”고 항변했다. 강재섭 대표도 “정치에는 신의도 중요하다. 법만으로 살 수 있다면 정치가 왜 필요한가” 하고 거들었다. 이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양쪽 의견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을 터. 그래선지 “같이 일 못 하겠다”며 으르렁대던 강 대표와 이 사무총장은 며칠 뒤 중재안이 만들어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해가 있었다”면서 손을 맞잡고 활짝 웃었다.
정치인들이 ‘밥그릇 싸움’이나 한다고, 자기들 맘대로 다시 손잡았다고 욕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정치판은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정치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원칙을 곧게 세워 밀어붙여야 할 때와, 협상하고 타협해서 윈윈할 때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선지 지금 정치권의 대세는 후자다.
불화설과 분당설이 나돌던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5일 대선 이후 처음으로 만나 “강한 야당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자”고 뜻을 모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맞섰던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날 6자회동을 갖고 본격 협상에 나섰다.
5년 동안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다 날 샌 경험 때문인지 국민은 편 갈라 싸우는 자체에 염증을 내는 듯하다. 그동안 과거사 청산이 중요한가, 미래 지향이 우선인가, 자주가 중심인가, 용미(用美)가 먼저인가 등 결론을 내기 힘든 문제들에 시달려 왔다.
정치뿐 아니다. 세상의 많은 일이 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용주의라는 것도 굳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최우선으로 유연하게 행동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이 아직 연방으로 묶이지 않았던 1787년. 식민지에서 해방된 13개 주가 제헌의회를 열었다. 공업가와 농장주, 큰 주와 작은 주, 남부와 북부 등의 주장이 엇갈려 5개월이 지나도록 합의를 보지 못하자 81세의 원로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섰다. 그는 연방 헌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믿거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러면서 말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내 판단의 정확성을 자꾸 의심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그의 판단은 옳았고 미국은 세계 최강의 통일국가가 되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대화의 정치’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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