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서령]다시 시작하는 새해, 힘이 솟는다

  • 입력 2008년 2월 10일 02시 52분


음력과 양력 공히 새해가 시작됐다. 이유식 하는 아기가 젖을 밥으로 서서히 바꾸듯 2008년이란 새해도, 음력설을 맞아 조상께 엎드려 절하고 떡국 한 그릇을 비우고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배분한 후에야 비로소 체감으로 다가온다. 1월 한 달은 말하자면 2008년이란 낯선 연도에 이르기 위한 이유기였던 셈이다.

매일 배달되는 24시간이라는 선물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린다는 이야기, 그게 무서워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올려 뜨던 밤엔 세월이 몹시도 더디게 흘렀다. 눈썹에 하얗게 밀가루를 발라놓은 삼촌의 장난질에 울음을 터뜨릴 때 머리맡엔 새 헝겊 냄새를 풍기며 설빔이 놓여 있었다. 그런 날엔 감정 전환이 빨라 낭패도 금방 황홀로 바뀌었다. 섣달 그믐날 잠들어도 눈썹에 아무 이상 없다는 걸 알게 될 때 시간의 수레바퀴는 갑자기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감정도 세분돼 낭패감의 종류는 복잡해지고 황홀의 경지도 쉬 손닿을 수 없도록 아득하게 도망쳐버린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새해는 온다. 서른에도 마흔에도 쉰에도 밤을 밀어내는 새벽빛이 동쪽하늘을 미묘하게 물들이면서 새 아침이 시작되는 건 마찬가지다. 동쪽 하늘에 해가 떠서 어둠을 밀어내는 것을 내다보는 감격은, 그렇다. 감정의 층위가 복잡해지는 만큼, 세월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열 살 어름보다 훨씬 찬란하고 신비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새 가능성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말이다. 닫힌 문은 아무 곳에도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젊은 날엔 몰랐다.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에 한숨 쉬는 것이 암울한 청춘기를 거쳐 온 우리들의 기본 코드였고, ‘삶이란 우주 속에서 제 생명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되자 나는 어느덧 청춘을 저만치 지나쳐버린 사람이 돼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삶의 이치란 게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건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어둠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제 몸을 찢어버린 친구들이 주변에 몇 있었다. 비로소 무거운 부채감 없이 미소하며 그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도 나이 먹음의 힘 같다. 아침마다 무상으로 쏟아지는 햇볕, 바람, 창공, 고스란히 밀봉돼 배달되는 24시간, 그게 365묶음(올해는 366묶음!)이나 들어 있는 일 년이란 시간을 젊은 날엔 지금처럼 귀해할 줄 몰랐다. 아침이란 말을 발음할 때 ‘아’에서는 청량한 공기 내음을, ‘침’에선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빛살의 형상을 감지할 줄도 천만 알지 못했다.

나는 올해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울 계획이다. 자전거를 배워 봄날 꽃피는 강변을 머리칼을 날리며 달려볼 요량이다. 열일곱 나던 해 여름, 낙동강 강둑에서 친구 경진이와 자전거를 연습했다. 경진이는 그날 다 배웠지만 나는 댓바람에 무릎이 깨졌었다. 그날 이후 선망만 하고 시도하지 못했던 자전거, 그 자전거를 올해는 꼭 배워 소설가 김훈 선생처럼 쉰 후반이 되면 전국을 일주하려 한다.

평생의 恨안되려면 바로 시작을

새해 아침에 열 가지 계획을 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아마존 탐험이라고 말하던 장돈식 선생의 나이는 그때가 일흔이었다. 나는 아마 서른 서넛쯤이었을 텐데 젖먹이가 딸려 있다는 핑계로 아마존에 혀만 내둘렀지 자전거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까딱하다간 평생 자전거를 못 배우고 죽을 수도 있겠다. 그랬다간 그게 한이 되어 내생에서도 자전거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자전거포 주인도, 사이클 선수도 나는 싫으니 얽힘의 고리를 풀자면 정말 하고 싶은 걸 이생에서 하는 수밖에. 바로 그걸 시작하라고 새해는 다시 온다. 그것도 일 년마다 한 번씩 꼬박꼬박!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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