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세상이 담긴 만두

  • 입력 2008년 2월 12일 02시 57분


부모님이 이북 출신인 내게 설날의 기억은 ‘만두’와 뗄 수 없는 연관을 갖고 있다. 한없이 만두를 빚어대는 명절 풍경을 보고는 갓 시집온 아내가 입을 딱 벌리던 모습도 기억에 새롭다. 때 맞춰 이웃나라 일본에서 중국발 ‘농약만두 파동’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으니 머릿속으로 ‘만두 담설(談說)’을 펼쳐 보기에는 꽤 적당한 설 연휴였다.

일본에서는 문제의 만두에 농약이 인위적으로 주입됐다는 사실이 판명되기까지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럴 만도 하다. 만두에는 수없이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오염원을 추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님이 어린 시절 드시던 만두는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로컬 푸드(local food)’의 면모에 손색없었을 것이다. 근방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와 쇠고기, 부근의 배추로 담근 김치, 고장의 콩으로 만든 두부, 역시 고장에서 생산된 숙주나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로컬 푸드’는커녕 국내산 재료로 만두 빚기란 ‘중국산 빼고 설 차례상 차리기’나 다름없이 힘들어졌다. 만두 재료의 일부분인 김치부터 외국산 재료를 빼고 담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연하자면 ‘로컬 푸드’란 단순히 ‘고장의 먹을거리’라는 단순 개념을 넘어서는 사회운동을 뜻한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근거리에서 생산된 음식을 먹자는 ‘로컬 푸드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이 운동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로컬 푸드의 이점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고장의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고, 지역마다 맞춤한 식재료를 생산해야 하니 ‘종자 다양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긴 시간을 들인 원거리 운송을 배제하니 합성보존료 사용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우리나라 농협이 일찌감치 내건 ‘신토불이(身土不二)’ 구호는 당시로서 꽤나 선진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운동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로컬 푸드’의 강조는 소비자에게는 식재료비 부담을 크게 만들고 제3세계 농민에게는 판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화시대 생산자와 소비자의 ‘윈윈’ 전략에 역행하는 셈이다. 수송과정을 줄여 환경친화적이라고 하지만 자기 고장에 적당치 않은 식품까지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감안하면 오히려 환경에 적대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쉽사리 근처 가게에서 국내산 고기와 채소, 두부로 만든 안심할 만한 만두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러나 이미 세계는 ‘나’와 ‘남’ 사이에 담장을 치고 거래를 끊고는 살 수 없는 시대로 진입했다. 자기 고장에서 좋은 식재료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되, 배타성이나 보호주의의 옹호로 흐르지는 않을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수입되는 식품에 대한 철저한 안전성 점검이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우리 농산품 개발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도 물론이다.

만두 한 입을 베어 물며 그 복합적인 맛을 음미해 보는 것이 새삼스럽다. 이 두부는 중국의 넓은 평원에서 경작된 콩으로 만들었을까. 이 쇠고기는 호주의 푸른 초원에서 방목된 소의 느낌을 담고 있을까. ‘신토불이’는 중요한 가르침이지만 땅과 뗄 수 없는 내 몸이 세계 곳곳의 땅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느낌도 나쁘지는 않다.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