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활에서 법과 원칙은 소중한 덕목이지만 법만능주의적 사고나 행동 또한 금기시돼야 한다. 특히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정치의 세계에 엄격한 법의 잣대만 들이대기에는 한계가 있다. 종교활동에 종교법(교회법)과 세속법인 실정법이 충돌할 경우에도 실정법만을 엄격히 적용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하지만 정당의 당헌 당규도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영향을 미치므로 법과 원칙에 입각한 해석이 우선해야 한다. 비록 정당이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사법상 결사와는 달리 헌법상 특별한 보호를 받는 결사체인 만큼 입헌주의의 기본 원리는 정당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헌법에서도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당의 당헌 당규도 헌법이 추구하는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정당의 당규 해석에 있어서도 헌법과 법률 해석의 일반 원리가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즉, 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문의(文意)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객관적 체계적인 해석이 뒷받침돼야 하고, 규범을 도입하게 된 제도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해석론과 문제점이 제기된다.
첫째, 문제의 당규는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 새 규범을 정립할 때에는 당사자에게 불이익한 소급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치주의 국가의 일반 원칙이다. 소급입법을 통해 헌법상 보장된 공무담임권을 제한하는 규정은 위헌이다.
둘째, 공천 신청을 제한하는 문제의 당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즉, ‘뇌물과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등’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할 것이냐, 완화해 해석할 것이냐가 논의의 초점이다. ‘뇌물과 정치자금 수수’를 한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이외의 법 위반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뇌물과 정치자금 수수’는 한정적 열거적 규정이 아니라 예시적 규정으로 보는 것이 법해석의 일반 원리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정당의 공직선거 후보 추천이라는 사안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이 같은 법의 일반원리에 입각한 해석론은 오간 데 없고 오로지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법과 원칙은 실종되고 정치적 투쟁만 난무한다. 결국 공직선거법 등 다른 실정법 위반 범죄는 빠지고 ‘뇌물과 정치자금 수수’만으로 한정해서 해석하는 대신 금고형 이상만 해당되고 벌금형은 제외한다는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당규 해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천심사과정에서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당규 해석의 여러 가능성은 논외로 하고 오로지 정치적 잣대만 들이댄다든가 아니면 대선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스스로 제정한 규범을 짓밟는다는 식의 포퓰리즘식 여론몰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무엇이 법과 원칙인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예지가 필요하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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