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처음 불거진 작년 6월에만 해도 그 파장이 이렇게 클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치고 있었고 지난 몇 년간의 호황으로 금융기관의 자본이 충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태의 충격이 조기에 흡수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또 중국, 인도 등 신흥경제의 급성장에 따른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탈동조화로 세계경제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예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임이 판명되고 있다. 최소한 미국 쪽에서 보면 이번 사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관점에서도 중국 등 신흥경제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이들 신흥경제가 대미 무역흑자를 통해 성장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침체는 세계경제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줄 것이다.
역사서 되풀이된 금융투기 전형
이번 사태는 그 본질에 있어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됐던 금융투기의 전형적인 예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의 주택을 놓고 투기판이 벌어졌고 금융기관들은 판돈을 중개하면서 돈을 벌었다. 수건돌리기를 하듯 돌리던 폭탄이 터지고 보니 떼돈을 번 사람과 재산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이 뒤섞여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격이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이처럼 커진 것은 무엇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판돈을 대주면서 판이 커졌기 때문이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부채담보채권(CDO), 구조화투자회사(SIV) 등과 같은 신종금융기법을 동원했다. 21세기 첨단금융기법에 대한 과신과 세계적인 투자은행의 이름값을 배경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은 몇 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조3000억 달러 규모로 급팽창했다.
첨단금융기법은 리스크를 부담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주체에게 재배분하는 수단이지 존재하는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줄이거나 없애 주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금융상품이나 금융시장이 연 20%를 초과하는 급성장을 계속하면 리스크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금융격언도 있다. 이번 사태는 그러한 점들을 상기시켜 준다.
그동안의 팽창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일들이 금융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벌어졌음이 드러났다.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미끼’ 금리라고 불릴 정도로 불투명한 금리 구조가 적용됐는가 하면, 투자은행들은 신용위험에 대한 중요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들조차도 관성적으로 최상위 신용등급을 남발했다. 그 결과 차입자, 대출기관, 투자은행, 신용평가회사, 투자자 등이 서로 소송과 맞소송을 제기하는 사상 초유의 연쇄 소송 사태가 시작되고 있다.
금융위기가 지나간 후에는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할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가 신용기록이 나쁘고 직업이 불안정한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하반기까지는 살얼음판
남미계 신규 이민자와 흑인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집값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했던 이들은 이제 집을 압류당하고 빚더미에 앉은 처지로 전락하고 있다. 흑인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압류물건이 누적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200만 가구가 이런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파장의 불확실성은 하반기가 돼야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낮은 수준의 고정금리가 적용되다 고율의 변동금리로 조정되는 모기지의 물량이 금년 3분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우리 경제도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묵 삼성생명 상무·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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