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대통합민주신당 이광재 의원은 자신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 대한 인사 청탁을 했다는 본보 보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 의원의 답변을 듣고 나니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 “인사나 이권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이라며 일갈했던 노 대통령이 떠올랐다. 아울러 ‘반부패’와 ‘구악 척결’을 그토록 강조했던 참여정부에서 ‘청탁이 아니라 추천’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이렇게 자주 듣게 된 것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여름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인사 청탁이 아니었다. 추천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백만 당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아리랑TV 부사장 인사 청탁 논란에 대해 노 대통령은 “청탁은 개인적으로 이익을 보자고 하는 것인데 홍보수석이 개인 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니 인사 추천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남춘 당시 인사수석도 “과거 정부 같으면 임기 후반기 때 인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얘기됐는데 참여정부에선 오히려 추천해도 안 되는 일이 많으니 청탁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통령 최측근의 말을 단순한 ‘추천’으로 받아들일 간 큰 공무원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이 의원은 자신이 ‘추천’한 정 전 청장에 대해 “일면식도 없고 통화도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말에 따르면 이 의원은 국세청 최고위급 간부의 자리를 부탁하면서 그 사람의 능력이나 인물됨 혹은 업무성과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그냥 ‘추천’했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패가망신’ 운운한 것은 측근들에 의한 정실 인사가 개인적 부패로, 나아가 국정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출범했던 참여정부 권력의 핵심 인사들이 권력을 사유화하면서도 별다른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으며 ‘인사 청탁이 아니라 인사 추천’이란 궤변을 늘어놓을 때부터 참여정부의 국정 실패는 예고돼 있었던 것이 아닐까.
길진균 정치부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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