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빠르게 바뀐 서울 한복판에서 숭례문은 600여 년 세월을 본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숭례문은 단순한 목조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이며 뿌리이고 한국 문화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런 숭례문이,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6·25라는 혹독한 전쟁의 참화도 비켜간 숭례문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한 사람에 의해 속절없이 불타버렸다.
그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노숙자의 쉼터’로 방치하고 야간에 경비원 한 사람도 두지 않는 경박한 문화 의식이 숭례문을 불태웠다. 물질적 가치에 치우쳐 정신의 산물인 문화를 돌보지 않은 데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 성금으로 복원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자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다. 숭례문을 복원하는 비용이 국가예산에서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국민 성금이어야 하느냐는 이번 참화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는 논란이다. 우리 경제 규모에 비추어 복원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니다. 안타까운 마음에서 수천만 원 또는 수억 원씩 성금을 내는 기업들도 있고, 어떤 기업은 사회 환원 차원에서 모든 복구비용을 혼자 부담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친다. 그러나 지금은 돈 걷는 방법을 말할 때가 아니다. 200억 원, 300억 원을 들여 숭례문을 복원한다고 해서 610년 전 조상들의 혼이 담긴 숭례문이 되살아날 수는 없다.
불탄 문화재를 복제하는 기술의 문제만도 아니다. 숭례문은 우리 역사의 자존심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의 혼을 담아서 100년 뒤의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 숭례문을 재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일만 역사가 아니고, 치욕도 역사다. 숭례문 복원은 우리가 문화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문화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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