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에 준 쌀 ‘軍이 먹는 줄’ 알고도 침묵한 南 정부

  • 입력 2008년 2월 14일 22시 59분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보낸 쌀이 남한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북한군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도적 지원이 이적(利敵)행위로 변질되는데도 남한 정부는 북한에 항의 한 마디 하지 않고 모른 척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 혈세로 북에 마구 퍼주면서 정작 할 말은 하지 못한 것은 우리 국민에게 걸핏하면 몽니를 부린 것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인도적 목적으로 북에 지원된 쌀이 주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다른 곳에 전용(轉用)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북한군이 수송을 담당한다는 사실 또한 오래전부터 탈북자들의 증언과 동영상 자료로 알려졌다. 탈북자 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작년 10월 탈북자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더니 7.6%인 19명만 ‘남한에서 지원한 쌀을 배급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위층 탈북자들은 남한 쌀의 대부분이 전쟁 비축미를 보관하는 ‘2호 창고’와 전투부대에 배정된다고 증언한다. 지원 물량의 90% 이상이 군으로 간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 국방부가 확인했다는 전용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다.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북한군 최전방부대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대한적십자사 마크 또는 ‘대한민국’ 글자가 찍힌 쌀 마대 400여 개가 포착됐다고 한다. 전용이 얼마나 심했으면 우리 군이 보는 앞에서 북한군이 쌀을 옮겼겠는가. 1995년부터 작년까지 북에 제공한 쌀 255만 t의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전용됐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쌀 전용 주장이 나올 때마다 그럴 리 없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어제 최전방 북한군이 남한 쌀을 먹는 증거가 확인됐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분배의 투명성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하나마나한 논평만 내놓았다. 동아일보가 2006년 9월 6일 주간동아 보도를 인용해 북한군이 남한 쌀을 트럭에 옮겨 싣는 동영상을 보도했을 때도 통일부는 비슷한 대응을 했다. 북의 약속위반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실없는 말만 되풀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의 쌀 전용을 눈감아 온 이유와 그 책임자들을 반드시 가려내야 한다. 현 정부에 기대할 수는 없다. 현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기념식수를 위해 대형 표석을 준비했다가 북이 거부하자 아무 소리 못하고 소형으로 바꿀 정도다. 차기 정부가 책임지고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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