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미경]‘여성 몫’의 의미

  • 입력 2008년 2월 15일 02시 59분


요즘 여기저기서 ‘여성 몫’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의 수석비서관 인사에서 사회정책수석에 발탁된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에게도 이 단어가 따라 붙었고, 박은경 대한YWCA연합회 회장이 내정된 환경부 장관은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거의 ‘여성 몫’으로 통했다.

한나라당 여성 국회의원들은 “18대 총선 지역구 공천에서 여성 후보 30% 할당을 의무화하라”면서 “여성 몫이 프랑스는 50%, 노르웨이는 40%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몫의 주체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기존에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과 불이익을 보상해 주기 위한 배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등 다른 소수집단과 비교했을 때 여성은 더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그래서 ‘여성 몫’ 담론은 언제나 뜨거운 찬반양론을 몰고 다닌다.

내친김에 주변 지인들에게 ‘여성 몫’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능력에 따라 평가돼야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차별, 특히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 몫은 필요하다.”

역시 팽팽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 사이에서도 ‘여성 몫’에 대한 반대 의견이 꽤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어릴 적부터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남성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익숙한 10, 20대 초반 여성에게 ‘여성 배려’는 거추장스러운 구호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 취업자 중 70%는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7.2%로 10년 전에 비해 겨우 1%포인트 올랐다. 13일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한 군필자 채용 가산점제가 시행될 경우 여성의 고용 기회는 지금보다 좁아질 것이다. ‘알파걸’이 ‘알파우먼’이 되기는 쉽지 않은 세상이다.

노동부는 2006년 여성 고용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를 만들었다. 이 조치는 매년 기업에 여성고용 현황과 목표를 정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600개였던 적용 대상 기업은 올해 1200개로 크게 늘었다.

정부는 여성계의 압력 속에서 이 조치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동종업종 평균의 60%에 미달한 기업은 시정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2006∼2007년 적용 대상 기업의 여성 고용률이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이 조치의 성적표가 초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행한 지 겨우 2년 지난 제도를 두고 벌써부터 강제성을 거론하는 것은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철저한 고용효과 분석 없이 섣불리 제재를 가할 경우 ‘역차별’ 논란만 커질 뿐이다.

또 탄력근무, 육아휴직 등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다른 제도적 장치는 미진한 상태에서 여성 고용만 늘린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고용, 교육 등의 분야에서 성별, 인종에 의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1965년에 마련된 미국의 ‘소수자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시행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많은 토론을 거쳐 제도적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의 성평등적 제도들이 정착되려면 그런 치열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정미경 교육생활부 차장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