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자들이 8∼11일 나흘간 국회의원 298명을 상대로 벌인 한미 FTA 관련 설문조사에서 이 정도 답변을 하는 의원은 ‘소신파’에 속했다.
“왜 하필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물어봅니까”라는 하소연도 비교적 솔직한 편으로 분류된다. 회의나 행사 참석을 핑계로 나흘 내내 전화를 이리저리 돌리며 끝내 답을 하지 않은 의원이 24명이었다. “신중하게 해야겠지요”라는 식의 ‘얼렁뚱땅’ 답변도 많았다.
설문조사를 하면서 정부가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왜 5개월 동안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한미 FTA를 찬성하는 것이 4월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2월 원안 통과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더 많은데도 ‘통과가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의원이 다수라는 설문조사 결과는 의원들의 이중적 태도를 여지없이 보여 줬다.
물론 정치인이 365일 국익을 위해서만 일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국익과 개인 이익이 충돌할 때 서슴없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국민의 대표’라 부를 수는 없다. 국민의 대표 일을 시켜서도 안 된다.
의원들의 비겁한 행태를 고발하는 동아일보 보도가 나간 1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비준동의안을 상정했다. “논의를 시작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의 압박이 워낙 강해서였다.
인하대 정인교(경제학) 교수는 “농촌 의원들에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라도 여야 지도자들이 강한 의지를 보여 줘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한 적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정치권 최고지도자들이 나서서 의원들을 이끌어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앞장서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의 리더십’, ‘결단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강명 경제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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