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원장에게 임기를 보장한 것은 특정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임기 동안 ‘법률을 통해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업무를 소신껏 처리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권 위원장은 국민과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고 본연의 업무에서 일탈해 기업 옥죄기와 언론 때리기의 선봉장 노릇을 했다. 공정위는 신문사의 영세한 시골 지국에까지 마구잡이식으로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히 비판 신문 괴롭히기에 공정위 행정력을 대대적으로 동원한 것은 ‘노무현 코드’에 대한 봉사였지, 공정위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사람이, 아무리 관직이 좋기로서니, 앞으로는 ‘이명박 코드’에 맞춰 변신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감사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금융감독위원장 등을 임기제로 한 것도 공정위원장과 비슷한 취지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인을 향해 “임기가 있는 공직자는 임기를 지켜 주는 게 도리”라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전임자가 임명한 임기제 공직자의 임기를 무시한 장본인이다. 김각영 검찰총장은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현 검찰 수뇌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발언하자 재임 4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김대중 대통령 때 임명된 이남기 공정위원장도 임기를 약 5개월 남기고 노 정부 출범과 함께 옷을 벗었다. 그나마 김 정부와 노 정부는 색깔이 비슷했는데도 그랬다. 이번에는 좌우파 정권이 교체된 상황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표방한 새 정부에서 규제 체질이 굳어진 인물이 공정위를 계속 맡으면 시장에서 엉뚱한 혼선이 생길 우려가 있다. 현 정부와 새 정부의 철학이 현저히 다르다는 점은 권 위원장도 잘 알 것이다. 그가 보여 온 코드는 새 시대에 안 맞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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