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종대]중국에도 이런 거 있어?

  • 입력 2008년 2월 20일 20시 05분


“중국에도 이런 거 있어?”

“야, 너희는 목욕은 좀 하니?”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한다. 말을 던지는 사람은 무심결에 나왔을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 중국과 연관된 부정적인 기사가 떴다 하면 곧바로 댓글에 등장하는 단어가 ‘짱깨’와 ‘짱꼴라’다. 상점 주인을 뜻하는 ‘장구이(掌櫃)’가 변형된 말이라는 설이 있지만 지금은 어원에 상관없이 중국인을 얕잡아 부를 때 쓰인다.

인터넷에 댓글을 올리는 사람은 ‘중국인이 이게 무슨 말인지나 알겠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엔 이미 3만3650명에 이르는 중국인 유학생이 있다. 이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한국에 대한 단상(斷想)’은 곧바로 2억1000여 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 인터넷 사용자에게 전달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엔 미군 빼고 한국에 있는 것은 다 있어.”

한국에 사는 한 중국인이 “중국에도 이런 거 있어?”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자 이를 본 중국의 누리꾼이 올려놓은 문구다. 한국이 자기 나라도 스스로 지키지 못해 외국군에 의존하고 있음을 은근히 비꼬는 말이다.

중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 뒤의 댓글엔 한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가오리방쯔(高麗棒子)’가 줄을 잇는다.

요즘은 중국의 언론까지 나서 혐한(嫌韓) 분위기를 부추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주가 야반도주했다는 소식은 곧잘 크게 다뤄진다. 매년 직원 평가를 실시해 최하등급을 받은 일부 직원을 해고해 온 중국 소재 한국 기업의 경영행위가 새 노동법 실시를 앞둔 ‘꼼수 해고’로 보도돼 해당 기업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 말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의 한 언론매체는 “한국 정부가 ‘풍수지리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준비 중”이라며 “한국이 단오제에 이어 풍수지리설까지 빼앗아 가려 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로 많은 중국인이 분노했지만 한국 정부에 확인한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물론 중국의 권위 있는 런민(人民)일보나 영향력이 큰 신화(新華)통신이 이처럼 보도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보도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수의 오보가 누리꾼의 블로그를 타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이제 한국은 중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한국 드라마 ‘대장금’은 이곳의 한 언론매체가 실시한 조사에서 ‘가장 좋지 않은 드라마 1위’로 뽑히기도 했다.

문제는 앞으로 양국 교류가 급증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빈번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중국에서 한국통(韓國通), 지한파(知韓派) 하면 친한파(親韓派)로 분류되지만 이들이 언제 혐한파(嫌韓派), 반한파(反韓派)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중국의 한 외교관은 “양국 교류는 갈수록 늘지만 양국 국민의 감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중국 역시 최근 초고속 성장 속에 갈수록 자긍심이 커지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에만 함께 번영할 수 있다. 50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살아오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듯 앞으로도 이런 관계가 계속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먼저 배려하고 사려 깊게 행동해줄 것을 14억 한국인과 중국인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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