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주선]미등록 규제 솎아내기

  • 입력 2008년 2월 22일 02시 56분


새 정부가 국정 최고 과제로 정한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내세운 것이 규제 개혁이다. 지금까지 규제 개혁이 체감도가 낮았던 이유는 수요자가 요구하는 핵심 과제에 대한 개혁이 지지부진할 뿐만 아니라 부실한 규제 관리 때문이다.

규제 관리의 시발점은 도대체 어떤 규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규제 등록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행정규제기본법은 정부의 각 부처청이 모든 소관 규제를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등록된 규제 수보다 많은 규제가 등록되지 않은 채 국민의 손과 발을 묶었으니 정부가 아무리 규제 개혁을 해도 체감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 포함)와 노동부를 대상으로 미등록 규제를 조사해 보니 2007년 5월 현재 두 부처의 등록 규제 수는 각각 844건과 190건, 미등록된 규제는 각각 486건과 610건이었다. 이 조사로 미루어 볼 때 현재 미등록인 정부 규제는 2500∼7500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수치는 해당 부처들이 주무인 모든 법률을 조사할 경우 더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미등록 규제 중 법률에 규정된 중요 규제만도 재경부(금감위 포함) 239건, 노동부 29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경부의 미등록 규제 가운데는 은행법 제35조의 3의 대주주가 발행한 주식의 취득한도 등, 보험업법 제109조의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제한, 대부업법 제15조의 연체이자율의 제한 등 중요 규제가 포함돼 있다. 노동부의 근로기준법에 있는 규제들 가운데는 제23조의 해고제한, 제24조의 정리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제52조의 선택적 시간근로제, 제53조의 연장근로의 제한, 제56조의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대한 추가적인 임금지급 기준 등 중요 규제가 미등록 상태에 있다.

성공적인 규제 개혁을 이루려면 미등록 규제들을 새 정부 출범 초에 모두 등록시키고 대대적인 정비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득이 그대로 두어야 하는 규제들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품질 개선을 해야 한다. 또 규제 등록을 누락한 부처의 장과 해당 공무원,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규제개혁위원회의 등록 담당 공무원과 그 감독자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행정규제기본법을 고쳐야 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의 경험으로 보면 미등록 규제의 전수 정비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규제를 얼마나 폐지해야 할지에 대한 수량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과감하게 규제를 축소하는 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오죽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렇게 수량 목표를 정해서 규제를 폐지하는 방법을 ‘규제 기요틴(regulatory guillotine)’이라고 이름 붙여서 성공적인 규제 개혁 방법으로 소개했겠는가.

새 정부 출범 초기가 중요하다. 출범 1개월 이내에 각 부처청이 모든 미등록 규제를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하도록 하고 이를 규제개혁위원회가 심의해 확정한 뒤 3개월 내에 대통령이 정한 규제 개혁의 수량 목표에 맞추어 대대적인 규제 정비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인수위원회가 마련한 기업활동 관련 핵심 규제 개혁 과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정부 조직의 기능 조정과 공무원 구조조정을 병행하면 규제 개혁은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결실을 볼 것이다.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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