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상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현장조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문화재를 우선해야 하느냐, 사람을 우선해야 하느냐 하는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 만만치 않다. 가서 보기 전에는 당연히 문화재를 우선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 가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면 마음이 흔들린다. 웬만하면 그들 삶의 편의를 봐 주고 싶은 것이 인정이다.
경기 수원 융건릉 앞에서 가건물을 짓고 음식점을 하던 아주머니의 뭉그러진 손을 보고 마음 약해졌던 기억도 있다. 백제 500년 수도였던 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에 대한 기억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10년 전부터 발굴이 시작돼 유물 등이 나오던 이 지역에서 2000년 연립주택 재개발조합 주민들이 발굴 유적을 파괴하는 실력행사까지 하고 이곳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전문가를 폭행하는 사건이 났다.
어릴 때부터 문화재 교육시켜야
분노한 주민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던 현장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다행히 주민들에게 폭행당하지 않고 겨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와 소집된 회의에서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했다. 2001년의 일이다. 그리하여 5층 이상의 건물은 신축이 제한됐다. 그 후 이곳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엔 차라리 이사 갈 테니 집을 국가에서 사 달라는 민원이 많다. 문제는 그들에게 정당한 값을 주고 집을 살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과 지자체가 7 대 3으로 하게 돼 있는 보상기준에서 볼 때 문화재청의 예산이 훨씬 많이 책정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최근 문화재청은 현실론적인 측면으로 선회해 7층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터파기가 깊어져 지하 2∼3m에 집중된 초기백제 유물층은 완전히 훼손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집 한 칸 장만하는 것이 평생의 목적이 돼 버린 우리네 현실에서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으로 재산권을 침해당하는 이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누가 나무랄 수 있는가. 애국심을 호소하기엔 이들의 삶이 너무 절박하다.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존재하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이라는 사람들을 눈앞의 적으로 간주하고 분노하는 이들에게 이성을 갖고 판단하라는 충고는 한갓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래도 숭례문 화재에서 보여 준 국민의 애도와 예의는 일말의 위로가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대로 때늦은 후회가 있지만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자. ‘비 온 후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옛말대로 문화재 보호는 이제부터다.
우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단계부터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문화재 보호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범인이 “문화재는 복원하면 되지 않느냐. 다른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사람 다칠까 봐 숭례문을 선택했다. 인명살상 안한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라”라는 뜻의 말을 한 것은 그동안 문화재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잘못돼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다음으로는 정부와 국회가 우선적으로 문화재를 위한 특별법을 만든 뒤 예산을 늘려 본격적인 문화재 보호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사적 위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을 해 문화재 때문에 못살게 됐다는 원성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하고 문화재 보호를 위한 관리조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별법 제정, 보호-보상 확실하게
마지막으로 국민의 자발적인 문화재 보호운동이다. 이번 숭례문 소실에서 보여 준 국민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 비통해 하는 모습은 문화재 보호를 위한 충분한 저력을 확인해 주었다. 이번 사태의 시비가 가려진 뒤 책임 공방이 끝나고 나서 정부가 문화재 보호에 적극 나서고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는 등 국가적 조치가 선행되면 민간 차원의 문화재 보호운동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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