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마다 경험의 범위는 다르겠지만 1980년대 학번들의 대학 생활은 대부분 이런 공통점을 가졌다. 군홧발이 교정을 짓밟는 상황에서 예술적 낭만이나 지적 호기심만 추구하기는 어려웠다.
훗날 돌아보면 386은 이념적으로는 시대의 중압감에 눌렸지만, 생활면에서는 혜택 받은 세대였다. 전두환 정부가 대학 본고사를 폐지하고 과외를 금지함으로써 편안한 중고교 생활을 했다.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을 엄격히 하는 ‘졸업정원제’를 실시한다며 정원보다 30%를 더 뽑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두 졸업했다. 1980년대 경기 호황으로 졸업 후에는 일자리가 넘쳐 몇 개 회사에서 합격통지서를 받는 게 보통이었다.
졸업 후 먹고살기 바빠서 젊은 날을 잊고 있었던 그들에게 흑백 사진 한 장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일깨웠는지 모른다. 2002년 말 노동자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눈물을 흘리는 한 인권변호사의 사진 말이다.
젊은 날 가슴 한옆에 묻었던 ‘민중’에 대한 부채 의식, 사회 공동체와 정의(正義)를 향한 동경, 자유, 사랑, 평등…. 이런 것들이 갑자기 1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현실을 무색하게 했다. 나이는 다르지만 386운동권들과 ‘정신적 동지’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후 5년은 모두 겪은 대로다.
‘반미면 어떠냐’ 등 구설수에 올랐던 노 대통령의 말들은 한 나라 대통령의 말로는 적절치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존적 고민’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386들이 20대에 했던 자신의 과거 및 정체성에 대한 부정과 닮은꼴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에 공과(功過)가 있다면 386세대를 비롯한 일반 국민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5년여 전 1200만 명가량의 유권자가 노 대통령을 선택했다. 2004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발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진 것도 국민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5년 동안 겪었던 분열과 반목, 시행착오는 광복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세계화와 남북통일 시대에 우리가 씨름해야 할 많은 문제에 대한 ‘예방주사’라고 해도 좋다. 이견과 갈등을 좀 더 성숙하게 표현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다.
국민은 이번엔 ‘반미면 어떠냐’ 대신 ‘잘살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대통령을 뽑았다. 존재의 고민을 거쳤으니 실질과 효율이 더 수준 높고 단단하길 바랄 뿐이다.
현실에서 이미 386들은 사라졌다.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들이 나이로는 모두 40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386컴퓨터가 486, 펜티엄으로 발전한 것처럼 과거 386들도 한층 훌륭한 사회의 중심으로 거듭날 것이다.
신연수 정치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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