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시초가 된 작품으로는 흔히 1728년에 무대에 오른 존 게이의 발라드 오페라 ‘거지 오페라’를 꼽는다. 뮤지컬이 미국에 전해진 것은 1750년경이었고 1866년이 돼서야 미국인이 작곡한 첫 뮤지컬 ‘블랙 크룩’이 태어났으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뮤지컬은 1870년, 영국 런던의 사보이 극장에서 공연한 설리번 작곡의 ‘마법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앗이 싹트고 꽃피고 열매 맺은 시기, 즉 ‘뮤지컬의 황금기’는 1950년대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난 직후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시작은 1950년대 말에 올려진 ‘포기와 베스’로 보며, 이후 ‘살짜기 옵서예’(1966년), ‘시집가는 날’(1974년) 등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대공황과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곤궁한 현실을 잊게 해줄 꿈과 판타지를 갈망하게 됐고, 배우들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뮤지컬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그림 같은 의상을 입은 아름다운 배우들이 활짝 웃으며 꿈과 희망의 세계로 그들을 데려갔다. 뮤지컬이 연극과 오페라, 무용극과 콘서트에서 흥미로운 요소들만을 뽑아낸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장르가 된 데에는 사람들의 이런 욕구가 선행됐기 때문이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 나쁜 사람은 불행해지고 좋은 사람은 행복해진다, 사랑은 이루어지고 미덕은 보답받는다,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렇게 빤하고 상투적인 이야기들이 멋진 음악과 춤과 드라마로 포장돼 수십 년 동안 무대에 올려졌고 관객들과 함께 발전을 거듭해 왔다. 밝은 것, 따뜻한 것, 재미있는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들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뮤지컬을 통해 사람들은 우울하고 배고픈 현실을 잊고 다시 한 번 희망을 꿈꾸게 된 것이다. 물론 비극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하거나 초현실적인 뮤지컬도 있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지닌 ‘본연의 임무’는 역시 권선징악과 해피엔드를 포함한 달콤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예술이 지닌 본연의 임무인지도 모른다. 예술이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고결한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탄생한 사랑의 결과물이 아닐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시를 짓고 편지를 쓰는 연인의 마음에서 가장 순수하고 따뜻한 예술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오락성과 대중성을 지닌 것은 상업성을 띠기 마련이지만,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작품이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때 묻지 않은 꿈과 희망과 사랑까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 무대에 오른 뮤지컬은 160여 편이다. 전해에 비해 40% 이상 증가한 수치이며, 올해에는 이 수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꿈은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달콤한 꿈’을 속삭이는 뮤지컬을 보며, 나 역시 나의 임무에 조금 더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임무’에.
황경신 작가·PAP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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