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봉사자의 기적 ‘한국의 힘’
대재앙이 터진 지 77일이 된 2월 21일로 충남 태안군 기름 유출 사고현장의 자원봉사자가 연인원 100만 명을 넘어섰다.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는 일상 속에서 100만 명의 수치는 그날 이후 처음 듣는 기분 좋은 소식이다. 그동안 충격적인 보고와 미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황금어장이 오염되고 계속 방제작업을 해 온 주민들 사이에서 자살 충동과 허무감, 집단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신경정신적 2차오염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간조와 만조를 따라 매서운 서풍 속에서 이어진 기름 제거 작업은 국민이 보여준 눈물겨운 봉사활동이다.
갯벌에 붙어 돌과 모래알을 씻는 봉사자들의 작은 손길 속에 기적은 일어났다. 정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기름 해안이 제 모습을 찾아갔다. 야생동물구조단 김신환 수의사는 기름바다에서 죽어 가는 바닷새들의 목숨을 건져 주었다. 주방세제와 식용유를 온수에 풀어서 깃털이 상하지 않게 온몸에 들러붙은 기름을 씻어냈다. 그가 살려낸 뿔논병아리,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왜가리들은 지금 그 고향 바다를 날고 있을 것이다.
1월 29일에 환경연합 여성위원회와 함께 태안지역 주민 건강영향 2차 조사에 참여한 아내는 창개항 하늘에서 바다 철새들이 선회하는 것을 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새 괭이갈매기 서식지로 알려진 난도가 기름으로 오염된 사실이 발견된 것을 보면 외진 섬까지 조사가 되진 않은 것 같다. 좀 더 차분한 조사가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름은 바위틈, 갯벌 밑, 해저에 숨어 있다. 우수를 지나 경칩을 앞두고 수온이 올라가면 그 기름들이 흐물흐물 본색을 드러낼 공산이 크다. 하지만 검은 유독성보다 더 강한 국민의 한마음 띠는 기름띠를 깨끗이 제거할 것이 분명하다. 민간단체에서는 오늘도 10차 봉사단을 모집한다. 2월 24일 오전 1시에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앞에서 또 출발한다. 어느 시민은 일요일의 봉사를 위해 불탄 숭례문의 새벽길을 지나 사직공원으로 향할 것이다.
봉사는 사랑이다. 결심을 하면 해내고야 마는 의지는 고난 속에서도 희망이 된다. 순수한 봉사의 띠가 펼쳐낸 긍정의 마음, 생명을 길러내는 바다에 대한 따뜻한 연민 속에서 희망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희망 꽃피우는 발길 이어져야
재앙의 흉터는 아직도 남아 있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이 열두 번도 넘게 태안을 찾아갔으니 말이다. 한 봉사자는 청둥오리와 뿔논병아리의 울부짖음을 듣고 와 이렇게 토로했다. “유독성 냄새와 기름을 덮어쓴 까만 돌들…. 가슴이 아파 먹먹해지던 순간, 바다 저만큼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돌아오던 길의 신두리 사구! 환상적인 풍경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아닌 먼 미래의 시간들임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진귀한 새로 알려진 홍방울새가 천수만에 찾아왔다고 한다. 신속한 피해보상금 지급, 주민의 건강 조사와 허베이 스피릿호 기름 유출 사고를 기억하는 지역행사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를 바란다. 이제 서해안을 먼 바다가 아닌 앞마당처럼 늘 새로운 눈길로 내다보아야 할 때다. 기름때를 닦는 소리가 서해안 돌밭에서 딸그락딸그락 하루 종일 들려온다.
고형렬 시인·계간 ‘시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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