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호]北개방의 바로미터, 개성공단

  • 입력 2008년 2월 26일 03시 01분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분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말이다. 지난 시절에 얽매여 함부로 역사를 파헤치고, 동북아 반도국가로서 지니는 한계와 국력을 무시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내일의 평화와 번영 기반을 훼손했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南사양산업 대체기지론 한계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그런 시각을 유지하길 바란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 남북관계를 대하는 정부의 정책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뒷돈으로 성사시킨 정상회담, 인도적 지원이라면서 돈 받고 팔아온 쌀 제공, 철길이 없어 쓸모가 없는데도 연결한 동해선 철도, 현장에 한 번 가보지도 않고 합의한 조선단지사업, 봉동에는 역이 없고 실어 나를 물자도 없는데 운행부터 시작한 화물열차.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지원하면서도 북한의 자구 노력 한 번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 자세.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것이다. 사실, 지난 시절 많은 발전 또한 있었다.

예로 개성공단을 보자. 당초는 무리하게 출발한 사업이었다. 이념이 실용을 앞섰고, 상징이 실질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정상의 합의이므로 남북 모두 조급했다. 시범단지는 예정을 1년 앞당겨 서둘러 시작됐고, 성과를 빨리 보이려다 보니 냄비부터 만들었다. 통신·통행·통관과 같이 기업의 실제 편의를 위한 제도적 노력은 나중으로 밀렸다. 임금 직불을 규정한 합의서는 무시됐다.

그럼에도 현재 개성의 의미는 사뭇 놀랍다. 2만3000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들이 남한 기업을 위해 근무하고 있고, 상주하는 남한 노동자만 1000여 명에 이른다. 대불공단의 5배 규모이고, 남한에서 종업원이 제일 많다는 시화공단의 3분의 1 수준이다. 북한의 주요 경제관료들도 개성을 견학하고 배워 간다. 이제는 관광까지 시작됐다. 금강산은 그저 산이나 보고 오지만, 개성에서는 사람을 보고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안보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개성을 오가는 사람들은 북한 군부대의 후방을 보며 다닌다. 이제 개성은 단순한 공단을 넘어서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남한 사양산업의 대체기지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남북경제 모두에 도움 되는 경쟁력 있는 비전이 만들어져야 한다.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도 확보해야 한다. 생산비와 물류비를 낮추기 위해서는 원료·부자재의 현지 공급이 가능해야 한다. 북한 기업도 입주해야 하고, 기술과 경영 노하우의 이전도 이뤄져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스스로 잘살아보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와 그에 따른 개방 개혁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

문 더 열어 실질적 진전 이뤄야

따라서 대통령은 조속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전략과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약으로 내걸었던 ‘비핵개방 3000’은 당연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비핵과 개방을 유도할 것인가가 당면한 화두이며, 비핵·개방만 한다면 우리가 돕지 않아도 북한은 국민소득 3000달러를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관계는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 가겠다고 밝혔다. 다행이고, 당연하다. 지난날 성과는 인정하고 발전시키며, 문제는 고쳐 나가야 한다. 그것이 실용이다. 과거 정권의 것이라고 무조건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이념일 뿐이다. 그동안 ‘이념적 열정’으로 추진 자체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냉철한 평가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야 하는 시기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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