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문명]심리치료

  • 입력 2008년 2월 27일 03시 00분


‘자아(自我)’를 표층(表層)과 심층(深層)으로 나눠 개념화한 사람이 철학자 베르그송이다. ‘표층 자아’는 자신의 욕망이나 외부의 시선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지는 자아이다. 우리가 타인의 ‘인격’ ‘성격’ ‘사람됨’이 어떻다고 말할 때 대개의 경우 몇 개의 두드러진 표층 자아를 묶어서 인상적으로 판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타인의 시선이 미칠 수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실한 자아가 있다. 바로 심층 자아다.

▷심층 자아는 흔히 ‘한 길 사람 속 모른다’고 할 때 그 ‘사람 속’이다.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주문 제작 상품처럼 그때그때 만든 자아가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자아다. 표층 자아는 단순하지만, 갖은 욕망의 복잡한 무늬와 다양한 감성의 충동이 섞여 있는 심층 자아는 복잡하다. 말이나 행동만 갖고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심층 자아 때문이다.

▷대법원이 과격 시위를 벌인 농민에게 유죄 판결과 함께 심리 치료 강의를 받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간을 겉과 속으로 나눠 다스려야 한다는 인식이 깔린 판결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법의 영역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마음속’을 고치지 않으면 똑같은 행동이 재발될 수 있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라는 명분을 내걸고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전경을 때리고, 도청 담을 무너뜨린 농민의 행동은 “흥분이나 충동을 조절하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의 문제”라고 법원은 판결했다.

▷약자보호나 휴머니즘의 포장을 쓰고 난무하는 언어들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찬 경우가 있다. 이런 증오심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때는 마음의 경로를 추적하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문제는 본인 스스로 ‘환자’라는 것을 깨닫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마음이 지옥이면 인생도 지옥이고 마음이 천국이면 인생도 천국이다. 미워할 때나 증오할 때는 평시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생활에 쏟을 건전한 에너지를 축내 정신 건강을 해친다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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