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미도]먹는 만큼만 크는 ‘영어 나무’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았다면 통역, 번역도 없을 것입니다. 영어 때문에 고전하는 일도, 사교육 광풍도, 영어 말하기 공교육 논쟁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바벨탑을 쌓은 벌로 인간은, 창조주가 천형(天刑)처럼 내린 외국어 공부의 고역을 치르고 있지요.

그 결과 한국에도 영어 때문에 병을 앓는 영어환자(English Patient)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영어를 훨씬 잘할 수 있는데도 고전하는 이유는 잘못 먹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한다(You're what you eat).” 올해 아카데미에서 각본상 후보에 오른 ‘라따뚜이’의 이 명대사가 우회적으로 우릴 일깨우듯이, 그동안 우리는 ‘편식 영어공부’를 해온 것이지요. 어휘, 문법만 골라 먹었으니까요.

의사소통의 큰 목적은 상생을 위한 관심(interest) 이해(understanding) 협상(negotiation) 협동(collaboration) 의존(mutuality) 사랑(love) 생존(survival) 등일 텐데요. 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이 말하기 능력이지요. 외국인이 동석한 식탁에서 모두 영어로 대화한다고 쳐보지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라는 뜻의 “I see”의 추임새쯤은 자연스럽게 넣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토익(TOEIC)에 말하기 평가가 추가됐지요. 늦은 감이 있습니다. 토익에서 ‘I see’처럼 들리는 IC는 국내(Internal)가 아니고 국제 커뮤니케이션(International Communication)이잖아요. 그런데 외국인과의 의사소통 능력평가인 토익의 응시자들이 정작 말하기를 못한다면 분명 음식을 잘못 섭취해온 것입니다. 그런 결과를 낳은 건 공교육 안팎의 영양사들이 문법, 어휘 중심의 식단만 차렸기 때문일 테지요.

그럼 무엇을 먹어야 말하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You are what you eat”에서 eat을 read로 바꾸면 해법이 보입니다.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한다’이니까요. 말하기의 필수영양소인 ‘what’은 결국 읽기를 통해 섭취되는 풍부한 콘텐츠이지요. 어려서부터 독서 많이 한 사람 치고 말하기, 글쓰기 못하는 사람이 드물듯이 다방면의 영어책을 많이 읽은 사람 치고 외국인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 또한 드물지요.

사교육 시장이 지금 더 들썩인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영어환자들의 치명적인 증세는 ‘허리 병’입니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그 허리 병(hurry sickness) 말이지요. 허리 병 환자의 특징은 ‘비법 컬렉션’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영어공부의 진정한 비법(秘法)이란 ‘실천 그 자체’일 텐데, 실천은 게을리 하면서 수많은 특약처방 속성 비법(非法)에 기대어 돈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지요.

거세더군요, “누구나 다 영어를 ‘잘’할 필요 있느냐”는 주장 또한! ‘잘’의 범위를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나 잘한다는 건, 각자의 분야에서 ‘필요한 만큼’ 잘한다는 뜻 아닐까요? 운전사이든, 외교관이든, 연예인이든, 전문적 대화이거나 일상적 회화이거나 ‘필요한 만큼’ 잘 말할 수 있게끔 이끄는 게 말하기 공교육의 목표일 것입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생각, 지식을 잘 전달해 상대로부터 “I see”를 이끌어내면 그게 곧 IC 무대에서 ‘누구나 잘하는’ 영어 아닐까요?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읽는 책이 내 존재를 결정하듯 이젠 “내가 구사하는 영어가 나(I am the English I speak)!”라는 비유가 가능한 이유이지요.

이미도 작가·외화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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