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된 통합민주당은 대통령 취임식 날 “오늘은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하루 동안 정쟁을 중단하겠다”며 ‘정쟁 없는 날’을 선포하고 실천했다.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과거 야당 시절의 야성(野性)은 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청와대에 장관 후보자 교체를 압박한 한나라당이 야당처럼 보였다.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도 (대통령이) 옳다고 하면 무조건 밀고 가는 거수기 정당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야 모두 총선이 코앞에 있어 민심의 역풍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 해본 야당, 야당 해본 여당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선거로 여야가 교체된 것은 1998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로써 거의 모든 의원이 여야를 경험하게 됐다.
여야가 자주 바뀌는 의원내각제 국가나 평균 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된 미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두 번의 여야 정권 교체는 정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야를 모두 해본 정당이나 의원은 여당이나 야당만 해본 정당 및 의원과 다를 만하다. 여당 때와 야당 때 행적을 국민과 인터넷이 기억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은 여당 때와 야당 때 180도 다른 이중 잣대(더블 스탠더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우리 편이 부동산을 사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彼一時此一時)’이라고 우긴다. 인사청문회 때 이미 볼 만큼 봤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과 비판견제 세력인 야당의 역할은 다르다. 하지만 5년 또는 10년마다 여야가 바뀌는 시대다. 여당은 야당, 야당은 여당 때 한 말과 행동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지 않는 정치를 해야 한다.
공직자 도덕성에 대한 기대 수준을 지금처럼 높여 놓은 것은 역설적이지만 한나라당이다. 2000년 6월 이한동 총리서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후 지금까지 약 100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실시됐다. 한나라당이 야당 때 낙마시킨 총리와 장관에게 적용한 기준을 이명박 정부 장관들에게 적용하면 몇이나 살아남았을까.
그렇다고 여당 해본 야당이 여당 때 당한 만큼 갚아 주겠다고 악을 쓰면 수준 낮은 정치의 악순환이 될 뿐이다. 자신들이 당한 게 억울하다면 억울한 희생자가 다시 나오지 않게 해야 정치가 발전하고 상대가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런 사례가 쌓이면 여야가 공감하는 기준이 생길 것이다.
오충일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는 새해 첫날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여당은 잘 못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야당 하는 것을 잘 보여주셨기 때문에 야당은 교과서처럼 확실히 잘할 것 같다.” 그러나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전 DJ식 야당 정치를 따라하면 시대착오의 정치가 되기 십상이다.
새 시대에는 당리당략을 넘어 국리민복을 놓고 여야가 경쟁하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이중 잣대부터 포기해야 한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