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논문 조작 표절로는 ‘세계적 대학’ 어림없다

  • 입력 2008년 3월 2일 23시 23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과 유사한 사건이 국내 대학의 개혁모델로 꼽히는 KAIST에서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대학 생명과학과 김태국 교수가 2005년 7월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과 2006년 6월 영국의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발표한 논문이 조작됐음이 드러난 것이다.

김 교수의 두 번째 ‘문제 논문’이 발표된 시기는 2005년 12월 황 교수 파문이 본격적으로 불거져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황 교수 팀의 논문은 조작’이라고 결론내린 2006년 1월 이후였다. 나라 전체가 ‘황우석 쇼크’에 빠져 있던 시기에 김 교수는 태연히 논문 조작을 했다는 얘기다. 김 교수 논문이 세포 사진의 현미경 배율을 조작해 연구 성과를 부풀린 것도 같은 세포 사진을 각도만 바꿔 실은 황 교수 사건과 흡사하다.

계속된 조작 사건으로 우리 학자들의 국제적 위상이 회복 불능 지경으로 추락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대학들은 황 교수 사건을 계기로 ‘연구윤리를 재정립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를 위한 구체적 노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2006년 8월 교수 출신인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논문 중복 게재로 낙마했다. 같은 해 12월 이필상 고려대 총장은 논문 표절 시비로 조기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가 인선한 박미석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도 각각 논문 표절 또는 중복 게재 의혹을 씻지 못하고 있다. KAIST는 지난해 10월 김신일 당시 교육부총리가 ‘대학 혁신의 최고 모델’로 치켜세웠을 정도로 평소 신뢰도가 높은 대학이어서 파장은 더 크다.

대학들은 저마다 ‘세계적인 대학이 되겠다’며 홍보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연구윤리조차 바로 세우지 못하면서 세계적인 대학 운운하는 것은 잠꼬대나 다름없다. 표절과 조작은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학문의 죽음’이요 ‘대학의 무덤’이다.

교수들은 동료들의 표절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 눈감아 주다가 공직에 진출할 때에야 밀고하듯이 슬쩍 흘린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이런 대학 풍토로는 선진화를 위한 인재 양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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