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암]고통 없이 성장 없다

  • 입력 2008년 3월 3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올해를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하면서 선진화의 역사적 고비를 넘기 위해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국민이 적극적으로 변화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새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큰 때문인지 선진화를 위한 고통 분담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고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일자리 부족과 상대적 빈곤을 겪었는데 또 무슨 고통이냐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번 취임사에서 ‘선진’ ‘발전’ ‘협력’ ‘변화’라는 용어는 각각 6회 이상 나왔지만 ‘개혁’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 사용됐다. 이미 ‘개혁 피로증’에 걸린 국민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다고 한다.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반드시 얻기 위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요즘은 인기 그룹 동방신기의 노래 제목이 될 만큼 잘 알려진 구절이다. 건국 후 20년의 산업화, 20년의 민주화 시대를 넘어 선진화의 새 시대를 여는 데 어찌 고통이 따르지 않겠는가.

지난 10년 동안 4%대에 머물렀던 경제성장률을 7%로 높이려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을 것이다.

제도 - 관행 뜯어고치기 급선무

더구나 최근에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파장이 미국의 경기 침체와 세계 경기 둔화의 우려로 확산되는 가운데, 원유 및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물가마저 불안해지고 있다. 이렇게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하면 정부가 친기업적 환경을 마련해 주더라도 기대했던 만큼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고, 물가 불안으로 경기를 부양하기도 어렵다.

선진화 원년의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과연 규제 완화, 감세, 작은 정부로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지 못한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면 지방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고, 대기업 규제를 풀면 당장 중소기업이 불리해진다. 규제를 풀어 기업 간 경쟁을 심화시키면 약자들이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감세도 그 혜택이 기업에만 돌아가고 고용 증진이나 가계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 가계도 세금 혜택이나 정부 지원을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선진화 원년의 대내외 경제 여건은 확실히 불리하다. 새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려고 인수위에서 마련한 ‘3개월 로드맵’도 여건의 변화에 따라서 완급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선진화를 향한 개혁을 늦출 수도 없다.

대외 여건의 악화는 우리의 통제 범위 밖에 있으므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해도 선진화를 위해 바꾸어야 할 제도와 관행이 너무나 많으므로 뒤로 미룰 여유가 없다.

일본은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기업과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실업이 크게 늘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개혁을 단행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임기 초에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기업 부도와 실업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업의 고통을 두려워한다면 결코 일본 경제가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규제 완화, 감세, 작은 정부를 강조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아예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정부의 표상, 애덤 스미스의 얼굴이 담긴 넥타이를 매게 했다. 그러나 작은 정부 목표 달성을 위해 비용이 든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힘들때 겪어야

1970년대 미국 공화당 정부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냈던 허버트 스타인 교수는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학을 ‘기쁨의 경제학’이라고 부르면서 비용과 고통이 따른다는 점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은 임기 초 혹독한 경기 불황을 겪은 후에야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실업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혁의 고통으로 경제가 위축된다면 그 부분만큼 경기를 부양해도 물가가 불안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 자체를 두려워한다면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어려울 때 겪는 것이 좋다. 올 한 해를 어렵게 보내야 밝은 미래가 찾아오리라.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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