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일말의 책임

  • 입력 2008년 3월 3일 03시 00분


‘사과(謝過)’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apology’는 그리스어 ‘apologi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apo’(떨어지다)와 ‘logos’(말)의 합성어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자 이민규 씨는 저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에서 “사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득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고, 스스로 좀 더 신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과를 할 땐 변명거리를 찾지 말고, 잘못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뉘우쳐라”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인선 논란과 관련해 “우리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해 또 다른 파문을 낳았다. ‘한 번 스치는 정도의 약간’을 뜻하는 ‘일말(一抹)’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책임이 있긴 하지만 아주 조금밖에 없다”로 들릴 수도 있다. 자신의 책임을 기꺼이 인정하기보다는 ‘남 탓’에 무게를 둔 듯한 인상을 준다. 야당으로부터 “그렇다면 나머지 책임은 야당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냐”는 역공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장관 후보자 인선은 전적으로 이 대통령 자신이 한 것이니, 부실 인선에 따른 책임 또한 자신이 지는 것이 마땅하다. 인재풀이 적었다느니, 인사 검증 자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느니 하는 것은 하나 마나 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 것까지를 감안해 제대로 된 인사를 하는 것이 능력 있는 지도자다. 전(前) 정권 측이 이른바 존안자료를 사실상 숨겨 버리다시피 해 인사 검증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더라도, 이왕 사과하려면 흠결 많은 사람들을 발탁한 잘못을 좀 더 확실하게 인정하는 게 옳았다.

▷노무현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대로 책임지려 하지 않은 탓이 가장 컸다. 일이 제대로 안 풀리면 ‘언론 탓’ ‘국민 탓’ ‘제도 탓’ ‘역사 탓’을 늘어놓아 책임을 떠넘기거나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 대통령이 진정 국민의 신망을 받는 지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전임자를 거울삼아 사과하고 책임지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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