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볼 만 해진 공천 물갈이 경쟁

  • 입력 2008년 3월 13일 23시 00분


한나라당이 텃밭인 영남권에서 현역 의원 25명을 공천 탈락시켰다. 불출마를 선언한 2명을 포함하면 62명의 의원 중 거의 절반이 물갈이돼 교체율이 43.55%에 이른다. 탈락한 의원 중에는 김무성 최고위원,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등 중진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인식돼 온 영남권에서 이처럼 대폭 물갈이를 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탈락자들의 반발과 계파별 이해득실 계산으로 후유증이 예상되지만 ‘공천 개혁’을 염원해 온 국민을 뒷심 삼아 극복해 내기 바란다. 민주당도 호남권에서 어제까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의원 등 현역 의원 9명과 박지원 전 DJ 비서실장을 공천 탈락시킨 데 이어 이날 비호남권에서 6명의 의원을 공천에서 제외했다. 여야(與野)가 경쟁하듯 벌이는 공천 개혁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현역 의원 물갈이가 정치개혁의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변화 욕구를 충실히 담아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보면 물갈이만으로도 희망을 갖게 된다. 개혁은 기득권을 타파하는 데서 시작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텃밭 물갈이’는 개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지식인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변화를 따라잡는 획기적 정당개혁에는 새로운 세력의 출현과 비전의 등장이 필수적”인 것이다.

물갈이가 진정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려면 정당정치의 환골탈태로 이어져야 한다. 3김 시대의 ‘보스 정치’를 ‘계파 정치’가 대체하고, 명색이 정당이 자신들의 손으로 공천 작업을 못해 외부인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낮은 제도화(制度化) 수준으로 선진정치의 착근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 엘리트들을 키우고 뽑는 일에서부터, 국가의 어젠다를 개발하는 일까지 시스템에 맡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함께 국정의 수레를 끌고 가야 할 18대 국회의 임무는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산업화 민주화에 이어 선진화를 달성하느냐 여부가 달려 있다. 여야의 텃밭 물갈이가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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