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3차 오일 쇼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 5위 석유 수입국이자 7위 석유 소비국인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국내 소비량 대비 자체 생산물량 비중)은 5%도 안 되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에너지 전문가는 고유가 상황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단기간에 자주개발률을 끌어올릴 수 없는 만큼 ‘에너지 대란(大亂)’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가정에서, 회사에서, 자동차 운전석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적지 않다”며 “고유가 상황을 한국만 겪는 것이 아닌 만큼 많은 사람이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는 것이 국가 에너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에너지 절약 첫걸음은 집에서
교사인 이화숙(34·여) 씨는 지난해부터 ‘가정 내 에너지 단속’에 나섰다. 자신도 모르게 낭비되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 우선 불필요하게 꽂혀 있는 플러그부터 뽑기 시작했고 TV와 컴퓨터의 동시 사용을 피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이 씨는 2006년보다 에너지 관련 비용을 15%가량 줄였다.
이 씨처럼 사용하지 않는 가전기기는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분리해 ‘대기(待機) 전력’의 낭비를 막는 게 중요하다. 대기 전력은 전원을 꺼도 플러그를 통해 소모되는 전력으로 가정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약 11%를 차지한다. 대기 전력만 효과적으로 줄여도 1년에 한 달은 전기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가스레인지의 불꽃 세기를 지나치게 높이는 것도 피해야 한다. 불꽃은 조리기구의 바닥에 닿을 정도면 충분하다. 고효율 조명등으로 바꾸는 것은 가정에서 절전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백열등을 전구형 형광등으로 교체하면 65∼70%의 절전이 가능하고 8배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 냉장고에 음식물을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은 널리 알려진 에너지 절약 방법. 냉장고의 음식물 보관 비중은 60∼70%가 적정하다. 이 수준에서 음식물을 10% 증가시키면 전기 소비량은 3.6% 늘어난다.
○ 전기 줄이는 게 회사 경쟁력
컴퓨터 모니터에서 화면보호기(스크린세이버)가 작동할 때 전력 소모량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전력량과 비슷하다. 이 때문에 컴퓨터를 장시간 쓰지 않을 때에는 모니터를 끄는 게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에는 불필요한 사무기기의 전원과 조명을 끄는 것도 회사의 전기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또 퇴근하면서 멀티 탭의 전원을 차단하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면서 화재 위험도 감소시킬 수 있다.
이와 함께 냉난방기를 꺼도 한 시간 정도는 연속적인 냉난방 효과가 있기 때문에 퇴근 전에 미리 꺼두는 게 좋다.
물류가 많은 회사라면 아예 외부의 물류전문기업과 아웃소싱 계약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회사가 소유한 화물차가 물건을 목적지에 내려놓은 뒤 빈 차로 돌아올 경우 에너지가 낭비되기 때문이다. 한국 화물차의 공차율은 39%로 미국(27%)이나 영국(28%)보다 훨씬 높다. 공차율을 10% 정도 줄이면 연간 물류비 3조 원, 유류비 562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에너지관리공단의 추산이다.
○ 자동차 에너지 소비 줄이는 방법
자동차는 운전 방법을 바꾸고 정비를 철저히 하면 적게는 10%에서 최고 20%까지 연료소비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10부제에 참여하면 승용차 대당 연간 평균 16만 원 안팎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의 승용차 전체(약 1160만 대)가 참여하면 연간 1조8000억 원이 절약된다.
내리막길이나 신호 대기를 앞둔 상황에서 가속페달을 밟지 않고 관성으로 가면 자동차는 연료 차단 기능이 작동해 연료 소모를 줄일 수 있다. 이때 변속기를 중립(N) 위치로 두면 안 된다.
가속페달을 짧게 밟았다 놓았다 하는 습관은 연비를 크게 떨어뜨린다. 다른 차를 끼워 주지 않으려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도 연료가 많이 든다. 급출발을 10번 하면 연료가 200∼300cc 더 소모된다. 1분 이상 정차할 때는 바로 시동을 끄고, 신호 대기에서 2분 이상 기다릴 것 같으면 자동변속기를 중립 위치에 두는 것이 좋다.
자동변속기는 보통 시속 60km 이상으로 정속 주행하면 구동축이 수동변속기처럼 직접 연결돼 연비가 향상된다. 에어컨은 처음에 강하게 작동한 뒤 약하게 조절하고 트렁크에 불필요한 짐을 싣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기업들 절약 또 절약… 저녁 9시면 모든 사무실 소등
항공기 식수 적게 싣고 선박은 기름값 싼 나라서 주유▼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사옥은 오후 9시가 되면 자동으로 모든 사무실의 불이 꺼진다. 혹시라도 직원들이 전등을 끄지 않고 퇴근한 경우에 대비한 조치다.
김호산 SK그룹 브랜드관리실 매니저는 “야근을 하려면 회사 총무팀에 전화해 불을 끄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거나, 매 시간 일일이 불을 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기업들의 내핍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LG전자 창원공장은 에너지 절약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에너지 절감 1인 1제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전원 코드 뽑고 퇴근하기, 에너지 낭비 현장 점검을 위한 순환 패트롤 운영 등의 아이디어가 채택돼 실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장별로 ‘에너지 지킴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지킴이는 부서별로 에너지관리 담당자를 지정해 필요 없는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감시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는 제도다.
유가에 민감한 항공업계와 해운업계는 쥐어짜기 경영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항공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항공기에 싣는 물의 중량까지 적정 수준으로 낮추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자체 에너지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항공기 탑재 중량을 관리하는 한편 본사 사무실 냉난방 온도까지 조절하고 있다.
해운업계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이나 싱가포르 등 유가가 상대적으로 싼 지역에서 연료를 집중적으로 넣고 선박에 연료 절감형 도료를 쓰는 등 ‘기름 아끼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정부도 ‘수요와 공급에 장애가 없으면 강제적인 유가대책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던 종전 태도를 바꿔 각종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 국민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고 조금 더 (정책적) 드라이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승용차 요일제를 민간 부문으로까지 확대 실시하고 찜질방, 스포츠·레저시설 등 에너지 다(多)소비 시설의 심야 이용시간을 단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들은 강제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자칫 국민 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실제 시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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