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에 이어 총선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신문사의 정당 데스크로선 이런 광고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다.
5년 가까운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 생활을 끝내고 4월 초 일본으로 돌아가는 다카쓰키 다다나오 씨는 “한국의 대선과 총선이 너무 재미있고 특이하다”고 했다.
“정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데 여론조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외부 인사들이 총선 공천심사를 한다. 총선 후보도 지역에서 올려서 낙점하는 게 아니라 중앙에서 결정해 내려 보내는데, 이런 방식들은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다.”
일본뿐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치 행태다.
지난 대선의 대세를 결정한 한나라당 경선 결과는 여론조사가 갈랐다. BBK 논란으로 얼룩졌던 본선의 승패에는 검찰이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새 정권에서 정치가 검찰권을 악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데서 자신의 명운이 검찰에 좌지우지될 뻔했던 기억의 편린이 느껴졌다.
총선은 어떤가. 외부에서 날아온 공천심사위원장과 공심위원들이 각 당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에선 여론조사 자체가 경선이다.
그렇다고 투명한 공천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에선 ‘이재오 이방호 사천(私薦)설’이 끊이지 않는다. ‘박재승의 공천혁명’을 내세웠던 민주당에선 지도부와 공심위의 ‘맞짱’ 대결로 공천심사가 중단되는 파행을 겪고 있다. ‘외인부대’는 결국 정치판 생리를 잘 아는 ‘선수’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론조사가, 검찰과 송사(訟事)가, 외인부대가 안방을 차지한 게 작금의 한국 정치 현실이다. 그렇다고 정치판이 깨끗해지는가. 오히려 더 음험한 정략과 술수, 뒷말이 피어오른다. 임기 내내 이념과 편 가르기, 시민단체와 노사모, 잦은 고소·고발이 정치의 안방을 차지했던 노무현 정부 때 대연정과 개헌 제의 같은 정략이 더욱 난무했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Le Papillon des Etoiles)은 범죄와 타락, 오염으로 멸망 위기를 맞은 지구를 떠나는 무리들의 얘기다. 이들은 은하계의 새 행성에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우주선에 정치인과 군인 등은 한 사람도 태우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와 권력투쟁은 자생했고, 결국 전쟁과 범죄로 몰락하게 된다. 정치인을 배제한다고 정치를 피할 수는 없는 게 인간세(人間世)의 이치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정치 실종사건’은 정치가 ‘모든 걸 말아먹던’ 시대에 대한 반동(反動)이었다. 타락한 정치권에만 민주화를 맡겨둘 수 없어서 386과 시민단체, 종교계 등이 정치에 개입했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더 지났다. ‘정치 외인부대’들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누릴 만큼 누렸다. 이제는 386과 시민단체, 노사모와 박사모, 정의구현사제단 등도 제자리로 돌아갈 때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정치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은 단연코 불가능하다.
이제 정치를 정치에 돌려주고, 국민은 표로 심판하면 된다. 정치여,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속히 돌아오라.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