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기업들 위기의 순간, 침묵은 ‘毒’이다

  • 입력 2008년 3월 25일 03시 00분


《1930년대 경제공황과 세계대전까지 버텨낸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유동성 악화설이 퍼진 지 나흘 만에 본사 건물 가격의 5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에 팔리고 말았다. 1971년 첫선을 보인 뒤 지금까지 약 57억 봉지가 팔린 ‘국민 과자’ 새우깡은 생쥐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되면서 수십 년간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허무하게 무너지고 ‘생쥐깡’이라는 오명(汚名)만 남았다. 삼성중공업의 태안 기름유출 사고, 화마로 잿더미가 된 국보 1호 숭례문, 녹슨 칼날이 발견된 동원F&B 참치캔 등…. 최근 기업과 공공기관에 위기를 안겨준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리스크 관리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사례 분석과 실용적 교훈은 25일 발간되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호에 실린다.》

○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위기 더 키워

농심은 위기 발생 이후 기업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의 전형을 보였다.

위기가 발생하면 기업들은 대부분 △의사 표명 유보나 침묵 △책임 회피 △은폐 등의 유혹에 빠진다. 실제 농심은 이물질 발견 후 한 달 동안 이를 감췄다.(침묵) 또 사태의 책임을 중국 현지 공장 탓으로 돌렸으며(책임 회피) 쥐머리로 추정된 이물질은 없애버렸다.(은폐) 이 과정에서 농심은 급속도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당사자인 삼성중공업도 ‘침묵’으로 화를 키웠다. 사고 원인을 정확히 따져본 뒤 방침을 정하겠다며 무려 47일간 구체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삼성중공업은 각종 음모설에 시달려야 했다.

전문가들은 위기 발생 이후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회사 잘못이 드러나면 △신속하게 △고위 임원이 직접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 한다. 이때 사과의 진실성이 떨어지면 일이 더 꼬인다. 농심은 사과문에 문제가 된 ‘노래방 새우깡’ 전량을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해당 제품 중 일부만 수거하면서 축소 의혹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사과의 효과가 반감됐다.

○ 사전 위기 식별과 대비가 열쇠

수많은 이가 이용하는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는 화재나 테러다. 조금만 생각해도 이런 위협 요인을 사전에 ‘식별’할 수 있다. 하지만 2003년 2월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관계당국은 이런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사전 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식품업체의 존립에 위협이 되는 것은 ‘식품 안전’ 문제다. 제조 공정이나 유통과정상 이물질이 포함되거나 변질될 수 있으며 심지어 독극물 투입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농심이나 동원F&B와 마찬가지로 국내 식품기업 가운데 각각의 위기를 식별해 적절한 대응책을 갖고 있는 기업은 드물다.

반면 해외 기업은 자체 제조공정은 물론이고 협력사의 위기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한다.

○ 리스크 관리 매뉴얼은 필수

2006년 3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술을 마신 직원이 놀이기구를 타다가 떨어져 숨지게 되기까지는 안전 사고 발생 시 취해야 할 행동 준칙과 보고 체계 등을 규정한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문화재청은 ‘문화재 재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매뉴얼에는 ‘신속하게 안전조치를 취한 후 침착한 소화 활동을 통해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문구만 담겨 있었다.

체계적인 위기관리 매뉴얼도 리스크 관리에 필수적이다.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위기상황의 정의 △위기의 성격 및 종류 △위기 대응팀 구성 △담당자별 행동 요령 △사내 비상연락망 등이 포함돼야 한다.

김상일 연세대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진단이나 감사 등 ‘힘없는 조직’에서 맡는 사례가 많다”며 “최고경영자가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줘야 이들이 어두운 부분을 속속들이 밝히며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칙
빠른 대응이 승부의 관건- 3시간 이내에 위기대응팀 구성
- 24시간 이내에 공식 견해 발표
침묵하지 말라- 침묵은 ‘시인’과 동의어로 해석될 수도
- 의사 표명이 없으면 억측 난무
사과는 최고의 방어책- 진실한 사과는 대중의 용서를 이끌어냄
- 최고경영자나 고위 임원이 사과해야 신뢰도가 높아짐
전사적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대외 채널 단일화 및 전 직원 함구령
- 외부 이해관계자와 직원이 접촉했을 때 반드시 보고하도록 조치
내부 커뮤니케이션 강화- 언론의 위기 보도로 조직원의 박탈감 및 동요 가능성이 있음
- 사내 게시판, 방송, 인트라넷을 통해 위기 관련 정보와 회사 방침을 전달
자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대한상공회의소), 위대한 기업들의 브랜드 전쟁(로널드 알솝)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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