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정호]밤낮없이 발로 뛰는 지자체장들

  • 입력 2008년 3월 25일 03시 00분


예부터 공공부문은 비효율의 대명사였다. 느릴 뿐 아니라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생각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샤를 티부라는 경제학자인데, 공공서비스도 지방자치에 맡기면 효율적으로 바뀐다고 주장했다. 그가 박사과정 학생이던 1956년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천재였지만 그 이론 하나만 남기고 43세에 요절했다. 그런데도 현대의 지방재정론은 그의 이론 위에 서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지방자치가 ‘효율성’ 열매 가져와

티부가 지방자치를 신뢰했던 것은 자치단체 간의 경쟁 때문이었다. 삼성과 LG와 소니가 소비자를 왕처럼 떠받드는 이유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정치인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 또 지방경제를 살려야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경쟁하다 보니 지방정부는 중앙과 달리 주민을 왕처럼 대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상품시장에서 쓸모없이 비싼 물건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듯이, 지방 간의 경쟁이 작동하는 곳에서는 공공부문에서도 비효율적인 것은 도태된다.

이번 동아일보의 시도지사 인터뷰 시리즈는 티부의 이론이 우리 지방정치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광역단체장들은 주민과 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음이 잘 드러났다. 자치단체장들의 궁극적 고객은 지역 유권자들이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지역이 살기 좋아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공급해 먹고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길 원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과 도지사들은 기업을 모셔가기 위해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닌다. 이제 지방의 정치인들에게 주민과 기업은 확실하게 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 노태우 정권 때만 해도 지방자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안 그래도 나라가 시끄러운데 지방까지 목소리를 높이면 나라 꼴은 엉망이 될 거라는 걱정이 팽배했다. 기업의 생각도 비슷했다. 중앙 공무원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하기도 힘든 판에, 지방에서까지 정치를 한다고 나서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걱정이었다. 지방자치법을 만들어 놓고도 몇십 년간 차일피일 시행을 미룬 것은 그런 걱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걱정들은 대부분 기우였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일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지방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혼란의 진원지가 아니라 공공부문을 효율화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해 왔다. 기업은 착취의 대상이기보다 서로 모셔가려는 대상이 됐다.

말단 공무원까지 머슴정신 심어야

이제 단체장들의 그런 자세를 말단 공무원에게까지 확산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고위직일수록 주민들의 충복이 되려는 욕구가 강하다. 4년마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주민들과 직접 얼굴을 대하는 자리로 내려갈수록 그런 유인은 줄어든다. 물론 예전과 비교하면 지방공무원들이 친절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역 주민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자리와 봉급을 보장받는 ‘공무원’ 아닌가. 말단까지 주민의 머슴이 될 때에 비로소 지역 주민들은 지방정치에서의 경쟁의 과실을 흡족하게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쟁이 좋은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의 돈을 받아 오기 위한 로비 경쟁, 수도권의 자치단체들을 묶어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경쟁은 해로운 경쟁이다. 그것으로 자기 지역이 조금 덕을 볼지는 모르지만 다른 지역에 그보다 훨씬 큰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자치단체 간의 잘살기 경쟁은 더 치열해져야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경쟁이어야 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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