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법과 사회]절차의 흠, 정치 퇴행 불렀다

  • 입력 2008년 3월 25일 03시 00분


1987년 헌법체제에서 20년 만에 대통령 선거에 연이어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대선에서 일방적이던 민심이 총선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선거라는 정치과정은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여야 한다. 과정이 아름다울 때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하지만 정치개혁과 세대교체란 이름으로 자행된 나눠 먹기식 공천은 정당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초한 당원과 유권자의 목소리는 오간 데 없고 위로부터의 낙하산만 요란하다. 겨우 명맥을 유지해 온 후보 경선은 아예 물 건너갔다. 정당 개혁 논의에서 제1의 화두인 정당 내부의 민주화를 위한 기초가 송두리째 무너진 셈이다. 3김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이후에는 기강조차 사라졌다. 민주화와 정치력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개혁이란 미명 아래 급조된 외인부대가 공천을 좌우한다. 한나라당은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 덕분인지 공천심사위원회와 집행부가 순항한다. 반면에 민주당에선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내닫는 공심위와 집행부 사이의 갈등이 일촉즉발 상태다. 정당의 본업 중의 본업인 후보자 공천을 외인부대에 의탁하고서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수뇌부가 측은해 보인다. 이래 가지고는 정당정치의 미래가 없다.

한국 헌정사에서 1971년, 2007년의 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정치 발전을 향한 야당의 역사의식을 보여준 김영삼, 박근혜의 아름다운 승복은 국민적 감동을 자아냈다. 하지만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대한 불복은 일상화돼 있다.

4년 전 차떼기당의 오명과 탄핵 역풍 속에서 풍찬노숙하던 그때를 벌써 잊었나. 한나라당의 공천은 개혁과 물갈이의 탈을 쓴 권력투쟁의 전리품처럼 보인다. ‘웰빙 야당’이란 비판 속에 도로 찾은 권력에 벌써 취해 있다. 정치적 신뢰를 상품화한 박근혜 전 대표의 항명 속에 연출되는 탈락자들의 친박연대는 희화적이다. 노정객은 모두 쫓겨나고 형님만 남았다. 배 떠난 뒤의 형님 공천 비판론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10년간 고생한 동지가 버려진 자리에는 권력에 기생한 부나방들이 득실거린다. 오죽하면 당 윤리위원장이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비판하겠는가. 공천 책임을 지겠다면 대표직 사퇴가 순리이지 총선 불출마로 돌아갈 일이 아니다. 대선 민의를 외면한 탐욕은 국민적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10년 만에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선 과정에서 온갖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정통 야당인 민주당으로 되돌아온 탕아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나라당 출신이 입당 몇 달 만에 당 대표에 취임했다. 대선 후보도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나마 당 대표와 또 다른 대선 후보가 정치생명을 담보한 채 서울 출마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야당성의 부활을 호소한다. 권력에 탐닉한 한나라당에 비하면 그래도 야당의 위기를 잘 인식하고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어제의 동지 사이인 손학규와 박진, 정동영과 정몽준의 대회전은 정당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킨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헌신하다 결별한 두 정 씨의 과거사부터 정리돼야 한다.

물갈이 공천의 와중에 그간 한국 정치를 좌우한 3김 시대가 막을 내렸다. 민주화세력의 상징인 범민주계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여야로 각개 약진해 정권을 장악했다. 민주화운동이 무슨 훈장일 수는 없지만 지난 15년간 충분히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민주화세력의 연착륙 실패는 국가적 불행이다. 실용주의란 포장 아래 과거를 묻지 않는 인사와 공천은 YS의 민주계에 대한 숙청 항의로 이어진다. DJ의 불만 어린 투정도 소리 없는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다.

성낙인 서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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