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사이언스]남자의 키, 몽테뉴의 경우

  • 입력 2008년 3월 26일 18시 20분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
키가 작은 사람들은 아담하기는 하지만 수려하지 못하다.

- 아리스토텔레스

조회시간에는 늘 맨 앞에 섰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한달에 한번 줄 맨 뒤에 서는 상황이 있었다. 교련조회시간인데 이때는 키가 큰 순서로 서기 때문이다. 키 큰 친구들의 숲 뒤에 있다 보니 옆 친구와 잡담도 하고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일 때도 다리를 들었다 비틀었다, 아무튼 견딜만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교련조회 때는 거꾸로 줄을 서지?’

얼마 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다가 오래 전 의문에 대한 답을 발견했다. “내 키는 중간이 좀 못 된다”로 시작하는 이 부분은 외모와 몸집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귀족으로서 전투에 수차례 참가했던 몽테뉴는 “이 결함은 그 자체가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지휘관의 직책을 맡은 자에게는 더욱 불편할 일”이라며 그 이유는 “훌륭한 외모와 몸집의 위풍이 주는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그는 옛사람들이 군사를 뽑을 때 체격이 당당하고 키가 큰 것을 고려한 일은 옳았다며 그 이유로 “키가 크고 몸집이 당당한 지휘관이 군대의 선두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존경심이 일어나고 적군에게는 공포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련이라는 게 결국 군대를 흉내 낸 연습이니 키 큰 순서대로 줄을 세우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최근 남자는 키가 클수록 질투심이 덜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들은 잘생기고 튼튼한 부자를 경쟁자로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감과 질투심은 반비례하는 모양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키가 큰 남성이 여성의 눈길을 끈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통한다고 설명했다.

남자들이 여자 외모만 따진다고 말들이 많지만 사실 여자들도 그만큼 따지는 게 남자의 키다. 진화론적으로 봐도 덩치가 큰 수컷이 대체로 힘이 세고 튼튼하다. 따라서 몸집이 확연히 차이가 날 경우 싸움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수컷의 완력에 밀려 암컷에게 접근하지도 못하는 짐승에 비한다면 그래도 사람의 조건은 얼마나 민주적인가.

우리 사회가 미녀를 좋아하고 키 큰 남자에 눈길을 주는 경향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본능적’ 경향을 속물적이라고 폄하하는 얘기를 들으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다고 안 되는 몸을 가지고 억지로 성형을 한다, 키를 늘린다 하는 모습도 보기 민망하다.

자신이 갖지 못한 미덕이라도 선선히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모습. 16세기 프랑스 보르도의 귀족 ‘몽테뉴’가 오늘날의 누구보다도 ‘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 주말은 보르도 와인 한잔을 옆에 두고 ‘수상록’을 마저 읽으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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