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하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그제 “최근 원-달러 환율이 1030원까지 갔는데 단기적으로 보면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말해 혼선을 키웠다. 이는 ‘환율이 이미 천장을 찍었으니 떨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으로 해석돼 환율이 6년 11개월 만의 최대폭인 20원 이상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같은 날 강 장관은 수출 확대를 위해 환율 상승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국 경제의 지휘부에서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 시장을 교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과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외환위기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기초체력이 약해진 우리 경제로서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물가 중 어느 한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장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딱 부러지게 우선순위를 두기 어렵다는 강 장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나 향후 방향에 대한 정부 차원의 언급은 시장의 반응까지도 예상해 극히 절제된 언어로 해야 한다.
그런데도 강 장관과 이 총재는 각종 악재로 가뜩이나 취약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힘을 모으기보다는 금리와 환율 정책의 주도권 경쟁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국면에서 유독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이에 따라 주가 하락 폭이 커졌다. 시장 참가자들을 상대로 고도의 두뇌게임을 벌여야 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어설프게 자기 패를 미리 보여주는 우(愚)를 범한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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