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도 그러하지만 학문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저장,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글쓰기다. 전자공학이든 군사학이든 열심히 공부해 뛰어난 업적과 특출한 지식을 가져도 글쓰기 능력 부족으로 자기만 알고 남에게 알려주지 않으려는 ‘청기와 장수 심보’가 없는데도 그런 처지에 놓인 분이 많다.
문학인이나 언론인, 학자와 같이 소위 펜클럽 회원만이 아니라 경영인이나 엔지니어, 종교인에게도 글 쓰는 능력은 속한 분야의 지식과 사상을 사회로 환원하는 통로다. 모든 사람이 명문장가가 될 순 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있고, 독서는 사람을 풍부하게 하고 대화는 사람을 유연하게 하고 필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어 보면 그 오류가 드러나기도 하고, 그래서 더 명료하게 다듬을 수 있다. 글쓰기는 학습과 수행의 중요한 방법일뿐더러 지식의 보편성 획득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교육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면 저술은 민주주의의 꽃이나 열매에 비교할 만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문사나 글씨, 그림을 잘하는 이들은 후세에 불후의 명성을 전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음악인이나 춤꾼 같은 공연예술가들은 기예와 예술혼을 저장하고 전달할 방도가 없었다. 조선 중종 때 당대 최고의 거문고 악사 이마지(李馬智)의 토로가 그런 사정을 말한다. 수많은 귀족이 운집한 자리에서 거문고 연주로 좌중을 압도하던 이마지가 연주를 마친 뒤 슬픈 얼굴로 한탄했다.
“비록 이마지가 음률을 잘했다고 말한들 뒷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그 수준과 품격을 알겠는지요? 호파(瓠巴)와 백아(伯牙)가 중국의 뛰어난 악사였으나 죽은 날 밤부터 벌써 그 소리를 평가할 길은 없었습니다.”
그의 탄식도 동시대 문사인 김안로(金安老)의 문집에 실려 있기에 전해졌고 지금은 안대회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 옮겨뒀기에 누구나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처지가 뒤바뀌어 음악인이나 무용가, 영화인 같은 예술인은 발전한 영상과 음향 저장기술을 통해 자신의 예술혼을 고스란히 보존 전달한다. 오히려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학자, 추상적 관념을 추구하는 종교적 수행자는 자신의 지식과 사상을 정리할 기회조차 없다.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님이 라이팅 스쿨의 필요성을 개진할 만하지 않은가.
문화의 이상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다. 그러자면 서로 다른 지식과 처지가 개진돼야 한다. 지식인의 저술능력 부재는 민주사회 발전에도 장애가 되지만 문화적 선진화와 지식기반사회 건설에도 맹점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대중지식 시장에 진열되지 못한 개인의 지식은 그 자체로 편협해질 수 있다.
로스쿨과 영어교육, 디자인코리아나 한류마케팅도 중요하지만 당대 지식인과 학자의 활발한 저술활동이 진정한 민주사회, 문화선진국의 바탕이다. 굳이 라이팅 스쿨까지 만들 필요는 없겠지만 지식인의 저술능력 향상을 위한 개인과 대학, 그리고 유관 국가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과 기능을 기록해 상장할 줄 아는 지적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야말로 다함께 어울려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이다.
심상대 소설가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