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행동주의 재무이론 전문가 美프린스턴대 해리슨 홍

  • 입력 2008년 4월 5일 02시 55분


재무 분야의 젊은 거장 해리슨 홍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이 오히려 비합리적 행동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가 서울대 MBA스쿨에서 행동주의 재무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재무 분야의 젊은 거장 해리슨 홍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이 오히려 비합리적 행동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가 서울대 MBA스쿨에서 행동주의 재무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석학 연쇄 인터뷰 서울대 MBA 스쿨-동아일보

“개인투자자들 너무 똑똑해서 탈

정보홍수에 현혹않는 뚝심 필요”

“재보고 또 재보다 되레 비합리적 판단

예측 능력 과신 말고 세운 원칙 지켜야

中증시 하락 불구 여전히 고평가 상태

위험 줄이려면 저개발국 분산 투자를”

《동아일보가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스쿨)과 함께 세계 최고의 경영 석학 21명과 릴레이 인터뷰를 갖습니다. 기업 전략 분야의 권위자 캐시 해리건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의 인터뷰(본보 3월 29일자 B5면)에 이어 이번에는 행동주의 재무이론(behavioral finance)의 젊은 거장 해리슨 홍 프린스턴대 교수를 만났습니다. 서울대는 글로벌 MBA 과정을 육성하기 위해 분야별 최고의 연구 성과를 낸 외국인 교수 21명을 7월 초까지 순차적으로 초청합니다. 동아일보는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석학들과 심층 인터뷰를 갖고 첨단 경영 기법과 이론, 대가의 통찰 등을 소개합니다. 또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한국 최초의 고품격 경영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석학들의 서울대 강연 내용을 요약해 전해드립니다. 서울대 MBA스쿨 및 동아일보와 함께 천재 경영이론가들이 펼치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 투자자가 기관투자가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들은 너무 똑똑해서 문제입니다. 한 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 두 번 세 번 생각하다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곤 합니다.”

행동주의 재무이론(behavioral finance)의 세계적 권위자 해리슨 홍(38)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이런 충고를 던졌다. 홍 교수는 투자자의 불완전성과 심리적 요소에 집중해 투자 현상을 연구하는 행동주의 재무학계의 젊은 거장이다. 그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글로벌 MBA에서 2주간 투자론을 강의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행동주의 재무이론은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행동이 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들이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사용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주류 재무학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 실제 금융시장에서는 주류 재무학의 가정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과도한 주가 상승과 급격한 주가 하락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행동주의 재무이론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고 있다. 이 분야를 연구해 온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학계와 투자자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개인 투자자 과도한 자신감 갖지 말라

홍 교수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개인 투자자의 비합리적 행동이 자주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투자자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우량주를 싸게 매수할 수 있는 기회(cherry picking)를 준 것입니다. 현재 주가는 투자를 고려해 볼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수준입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시장 흐름에 한발 앞서 움직이는 ‘똑똑한 돈(스마트 머니)’은 이미 지난해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후 저가 매수에 나섰다가 최근 주가가 급락하기 이전에는 한발 물러나 있었습니다.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스마트 머니가 저가 매수에 나설 때는 보유 주식을 마구 내던지다가 뒤늦게 매수에 나섰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손실을 많이 본 투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큰 손해를 봤다면 팔지 않고 버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데도 현 시점에서 손절매를 단행합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기관보다 똑똑합니다. 문제는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죠. 특히 전업 개인 투자자들은 자기들이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재 보다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가는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홍 교수는 최근 발생한 일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거나,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 개인 투자자를 함정에 빠뜨린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주가 움직임을 토대로 현재의 투자 의사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정 주식 가격이 많이 상승했을 때 ‘이제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하는 게 그 예다. 그는 개인 투자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너무 자주 매매하지 말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확신해서는 안 되며 △규율(discipline)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본토 시장의 경우 최근 주가가 하락했지만 고평가 현상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중국 본토 주식시장은 기관투자가보다 전업 개인 투자자가 너무 많아 문제입니다. 최근 하락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식시장이나 국제 상품시장은 아직도 약간 비싼 상태라고 봅니다.”

○ 공매도는 거품 제거하는 효율적 도구

공매도(short-selling·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팔자 주문을 내는 것) 제도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장점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최근 베어스턴스 사태에서 보듯 대량 공매도가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들 여지가 있지만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미국 5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는 헤지펀드들의 집중적인 공매도로 주가가 급락해 부도 위기에 내몰렸고 결국 본사 건물 값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JP모건으로 넘어갔다.

“공매도는 망할 만한 회사, 그냥 내버려둬도 언젠가는 망할 수밖에 없는 회사를 더 빨리 망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또 다른 투자자들에게 위험 신호를 미리 전달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입니다. 모든 투자자가 동일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베어스턴스의 경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관련 손실이 실제로 얼마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공매도가 집중돼 베어스턴스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이 회사의 부실을 잘 모르고 투자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공매도가 사전에 경종을 울려준 거죠.”

한국 증권거래법은 시장 교란을 이유로 원칙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고 있다. 홍 교수는 “어떤 제도를 규제한다는 것은 대단히 미묘한 문제지만 시장을 규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줄곧 정책금리를 낮추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홍 교수는 “FRB는 도덕적 해이보다 금융시장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금리 인하는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블랙먼데이(1987년 10월 19일 미국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날)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진단했다. “블랙먼데이는 매우 불가사의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아직도 명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경우 주택담보대출과 파생상품시장에서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에 원인을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심리적인 요인이 아니라 실물 경제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 투자 위험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 분산

홍 교수는 투자 위험을 줄이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분산(diversification)’을 꼽았다. 종목 수보다 특히 투자 지역의 분산이 중요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홍 교수는 미국 투자자라면 현 상황에서 50% 이상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미국 주식과 현금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세계 각국 금융시장이 미국 금융시장과 동조화(coupling)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가 움직임이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세가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뜻할 뿐이죠. 아직까지 많은 투자자들의 해외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자국 시장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짭니다. 자본시장 발달 속도가 늦은 저개발 국가일수록 자국 투자 비중이 높고, 이런 나라들일수록 미국 금융시장과의 상관관계가 낮습니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 분산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해리슨 홍 교수는

중국계 베트남인인 해리슨 홍 교수는 유년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은 수학 천재다. 그는 1992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탠퍼드대를 거쳐 2002년부터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행동주의 재무이론, 주식시장 효율성, 자산가격 결정과 시장 불완전성, 사회책임투자 등을 연구하고 있다. 재무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인 ‘Journal of Finance’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등에 수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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