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中취재 제한 ‘짜고 치는’ 건 아닐텐데

  • 입력 2008년 4월 11일 02시 59분


9일 오후 1시 50분경 중국 쓰촨 성 성도 청두(成都)에서 300km가량 떨어진 아바(阿패) 티베트 족 자치주의 저구(자고) 산 터널 앞 톨게이트. 아바 현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목이다. 아바 현에서는 지난달 16일 대규모 독립 시위가 발생해 많게는 7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톨게이트 앞에 임시 검문소를 차린 현지 공안은 장거리 버스를 세우고 승객 40여 명의 신분증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기자를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하차시켰다.

“안전을 위해 외국인은 아바 지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중국 외교부에서는 ‘지역이 안정돼 있어 들어가도 된다’는데 왜 안 되나요?” 항의하는 기자에게 공안은 “무조건 외국인은 안 된다”며 길을 막았다.

“그럼 외교부 직원을 바꿔줄 테니 직접 물어보세요.” 기자는 휴대전화로 외교부 직원을 직접 연결시켜 줬지만 이 직원은 한두 마디를 주고받더니 “나는 당신을 모른다”며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외교부 직원이 “왜 출입을 막는지 알아보겠다”고 연락을 해왔을 때는 이미 공안이 청두로 돌아가는 버스에 기자를 강제로 태운 뒤였다.

다음 날 외교부 직원은 “지금도 상황이 안정되지 못해 그런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9일 아바 현의 친척 집을 방문했다는 한 50대 여성은 “시위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 아바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취재를 하면서 이런 일을 겪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1월부터 올림픽이 끝나는 올해 10월 16일까지 취재대상이 허락하면 기자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도록 취재규정을 바꿨지만 실제로 중국 정부나 사회 종교단체가 취재에 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티베트 사태가 터진 뒤 기자가 베이징(北京)의 라마불교 사원인 융허궁(雍和宮)의 주지스님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담당 직원은 “베이징 외사판공실의 허가 문건을 가져와야 한다”며 거부했다.

이래서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발표한 취재자유 조치는 공염불에 불과할 따름이다. 혹시 중국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외신에 나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국제사회에서 결코 존중을 받기 어렵다. 중국이 올림픽을 치를 만큼 개방에 자신이 있다면 언론의 자유부터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순서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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