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재계 파워엘리트]포스코그룹

  • 입력 2008년 4월 24일 02시 58분


해외통… 영업통… 현장통… CEO들 ‘강철팀워크’

《포스코는 창립 40주년 기념일이던 이달 1일 새로운 경영 목표를 내놓았다. 포스코와 20개 자회사를 포함한 포스코그룹의 연간 매출액을 31조6000억 원(지난해 기준)에서 10년 뒤인 2018년까지 100조 원으로 늘려 ‘제2의 도약’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철강업계에 부는 인수합병(M&A) 바람 때문에 포스코의 상대적 순위가 다소 밀려난 것을 만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사실 포스코는 지금도 ‘잘나가는’ 기업이다. 조강생산능력 순위만 조금 떨어졌을 뿐 수익성이나 기술력, 시가총액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이다. 특히 수익성은 창사 이래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포스코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불과 40년 만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선진 제철업체를 누르고 세계 정상급 철강회사로 뛰어오르면서 ‘안주하면 뒤처진다’는 교훈을 체득했기 때문. 건설, 에너지 등 비(非)철강 부문을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스코그룹이 새로운 도약을 추진하는 중심에는 1969년 공채 1기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이구택 회장과 새로운 경영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장단이 있다. 허허벌판에서 ‘포스코 신화’를 창조했던 이들의 경험은 임직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 ‘살아있는 역사’ 이구택 회장-특급참모 윤석만 정준양 사장

이 회장은 포스코 내부에서 ‘대(大)선배’나 ‘맏형님’으로도 불린다. 현직 포스코 임직원 가운데 최고참인 데다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부하 직원들과 다양한 인연을 맺었기 때문.

하지만 이 회장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당시 지도교수였던 윤동석 교수가 포항제철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함께 입사할 것을 권유해 인생행로를 바꿨다. 입사 후에는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수출부장, 경영정책부장, 신사업본부장 등 경영 및 판매 분야에서 더 많이 근무했다.

2003년 회장에 선임된 그는 지난해 다시 연임돼 2010년까지 CEO를 맡게 된다. 첨단 철강 제조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에 성공했고 인도와 베트남 일관제철소 건설 동시 추진 등 글로벌 경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평가받아 2006년 인촌상(산업기술부문)’을 받았고 지난해 10월에는 국제철강협회(IISI) 회장에도 선임됐다.

포스코그룹의 주축인 포스코에는 두 명의 사장이 이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마케팅 부문장인 윤석만 포스코 사장은 1974년 공채로 입사해 30년 가까이 홍보 및 마케팅 업무를 맡아 왔다. 재계에서 ‘홍보맨’ 출신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랐다는 평을 듣는다. 대학생 시절 야학 교사를 하기도 했던 윤 사장은 진솔한 성품으로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끝까지 챙기는 ‘의리파’로 알려져 있다. 입사 이후 월급봉투, 그동안 받았던 사령장, 주요 기사 스크랩 등 회사와 자신에 관련된 자료를 모두 모아둘 정도로 꼼꼼하다.

포스코 생산기술 부문장인 정준양 사장은 파이넥스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했다는 평을 듣는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문화, 예술, 역사, 철학 등 인문과학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 대화를 할 때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리드한다. 인도 일관제철소 건설과 관련해 방한한 인도 손님을 위해 포스코 영빈관 직원을 인도음식 전문 식당에 보내 메뉴를 개발하게 하는 등 고객에 대한 정성이 남다르다는 평가도 받는다.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틸의 정준양 사장과는 입사 동기인 데다 한자 이름(鄭俊陽)도 같아 입사 초기 우편물이 엇갈리게 배달되는 등 해프닝도 많았다는 후문.

○ 포스코그룹에는 우리도 있다-자회사 이끄는 CEO들

포스코의 20개 자회사를 이끄는 CEO들도 주목할 만하다.

한수양 포스코건설 사장은 ‘철강인’이 ‘건설인’으로 변신한 케이스 중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사장 취임 이후 4조1000억 원이었던 연간 수주금액을 3년 만에 7조7000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임직원의 배우자 생일에 꽃다발과 선물을 자택으로 배달시켜 주는 등 자상한 측면도 있다.

성현욱 포스코특수강 사장은 포항제철소 설비 담당 부소장을 거친 철강설비 전문가다. 미소 띤 얼굴로 직접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는 ‘현장 밀착형 CEO’로 불리며 틈틈이 사내 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스포츠, 취미생활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즐겨 ‘이웃집 아저씨’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최종두 포스코강판 사장은 포스코에서 해외사무소장과 마케팅 부문 전무를 지낸 영업통. 회사 내부는 물론 본인도 좋아하는 ‘독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빈틈없는 일처리로 2006년 사장 취임 이후 1년 만에 회사 경영을 흑자로 전환했다.

유병창 포스데이타 사장은 포스코 해외법인에서만 12년을 근무한 ‘해외통’이다. 평소 유머집을 개인휴대정보기(PDA)에 내려받아 직원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에 활용하는 등 준비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승우 포스코파워 사장은 한국전력기술에서 근무하다 1986년 포항제철에 과장으로 입사한 전력발전 전문가로 포스코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연료전지 제조 사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다.

최병조 포스콘 사장은 광양제철소 부소장을 지낸 엔지니어 출신. ‘가족과 직장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가사불이(家社不二)’ 정신을 강조해 직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내면서 좋은 경영실적을 올리고 있다.

이상영 포스렉 사장은 순발력 있는 유머와 진솔한 얘기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경영인으로 직원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김준한 포스코경영연구소장(사장)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건설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친 경제연구원 출신의 전문 경영인. ‘걸어 다니는 통계집’으로 불릴 정도로 통계에 밝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70년대 공채 부사장들 “신성장 동력 우리손에”

한국의 간판 철강기업 포스코에는 이구택 회장과 윤석만 정준양 사장에 이어 5명의 부사장이 있다.

포스코의 핵심 업무를 이끄는 부사장들은 1970년대 공채를 통해 입사한 세대다. 포항 1고로(高爐)에서 첫 쇳물이 나온 뒤 회사에 들어와 포항, 광양의 일관제철소 종합 준공에 젊음을 바쳤다.

인도법인장인 조성식 부사장은 연간생산 1200만 t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현지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포스코 최대의 사업이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하다. 경영정책부장과 해외사업본부 아주사업 팀장, 투자 및 재무담당 임원을 거치며 기획과 투자 분야에 능통한 것이 인도사업 책임자로 발탁되는 발판이 됐다.

기획재무 부문장인 이동희 부사장은 ‘재무통’으로 꼽힌다. 현재 재무 리스크 관리, 기업설명회(IR) 활성화, 글로벌 재무전략 수립 등을 맡고 있다. 철강업계 지도를 뒤흔드는 인수합병(M&A)에 대한 대안도 이 부사장에게서 나온다. 사내에서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학구파’로도 알려져 있다.

최종태 부사장은 경영지원 부문장 겸 비서실 담당 임원으로 인재를 길러내는 ‘인사조직(HR)’ 전문가다. HR제도의 선진화와 핵심인재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포스코의 이미지도 그의 작품이다.

포스코 스테인리스 부문장인 정길수 부사장은 20여 년간 멕시코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서 근무한 글로벌 비즈니스 전문가다. 1996년 포스코의 중국법인 장가항포항불수강 총책을 맡아 이 회사를 중국의 3대 스테인리스 기업으로 키워 놨다.

광양제철소장인 허남석 부사장은 ‘혁신 전도사’로 불린다. 그의 혁신철학은 광양시청, 광주고등검찰청, 여수 해양수산청 등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에도 전수됐다.

윤석만 사장에 이어 포스코 홍보를 책임진 김상영 전무는 업종 성격상 일반 소비자와 접촉이 많지 않은 포스코의 기업 및 CEO 이미지를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을 듣는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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