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변호사 1만 명 시대

  • 입력 2008년 5월 1일 02시 57분


미국은 ‘변호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호사 자격자가 이미 100만 명을 넘어 변호사 없는 집안이 없을 정도다. 미 대통령 직속 경쟁력위원회(PCC) 보고서에 따르면 그중 75만 명이 실제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인구 10만 명당 변호사 수를 봐도 미국은 281명으로 독일 111명, 영국 82명 등을 제치고 단연 으뜸이다. 상하원 의원, 고급공무원, 기업경영인, 칼럼니스트 등 저명인사들의 절반 이상이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미국은 다인종(多人種) 국가여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법치(法治)가 필요했을 것이다. 운전면허시험에도 ‘왜 과속은 안 되는가’라는 문제가 나오면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이기 때문’이 정답이 되는 나라다. 이웃집 개가 시끄럽다고, 학교에서 급식을 제대로 안 준다고 일일이 법을 동원한다. 연예인들의 손해배상 소송도 비일비재하다. 재미동포들도 ‘수(sue·소송을 건다는 뜻)를 한다’는 말을 흔히 할 정도니 변호사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4월에 변호사 수가 1만 명을 넘었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6년 3명을 처음 배출한 이후 102년 만이다. 1970년대만 해도 한 해에 몇 십 명 정도였던 사법시험 합격자가 1980년대 들어 300명으로 훌쩍 뛴 뒤 매년 1000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전체 변호사 수가 1981년 불과 1000명에서 2002년 5000명으로 늘었고, 다시 6년 만에 1만 명 시대를 맞았다. 2012년부터 로스쿨이 매년 2000명씩을 배출하면 2015년엔 2만 명 시대가 된다.

▷변호사 수가 늘면 그만큼 적은 비용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받고, 좀 더 쉽게 변호사를 만날 수 있어야 정상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부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로스쿨 출신자 양산(量産)이 변호사 평균 수준을 크게 낮출 것이다, 사고 현장과 응급실 등을 쫓아다니며 소송을 부추기는 ‘앰뷸런스 변호사’가 많아져 남소(濫訴) 등 폐해를 낳을 것이다, 변호사가 서울 등 대도시에만 몰려 무변촌(無辯村) 문제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등등의 우려가 나온다. 변호사 1만 명 시대가 달갑지만은 않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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