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어린이에게 전쟁기념관을

  • 입력 2008년 5월 5일 02시 59분


어린이날을 앞두고 며칠 전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을 둘러봤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중앙에 하늘 높이 솟은 두 개의 검(劍) 모양 청동 조각품이 눈에 들어왔다. 상무(尙武)정신과 평화를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중심으로 6·25전쟁 때 함께 싸운 국군과 20개국의 유엔군 전사자 20여만 명을 추모하는 대형 조형물이 서 있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본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담은 ‘형제의 상(像)’이다. 박규철 국군 소위가 동생인 박용철 북한군 하전사(下戰士)를 품어 안고 있다. 이 밖에 기념관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 전투기, 폭격기, 헬리콥터, 잠수함에서부터 각종 탱크와 장갑차, 나이키 스커드 미사일을 비롯한 유도탄과 대포 등이 즐비하다.

초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수다를 떨고 장난을 치는 어린이도 많았지만 모처럼의 견학이 즐거운 듯했다. 지방에서 수학여행 온 어린이가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하루 1500∼2000명의 어린이가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기념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전쟁 중에 산화하거나 큰 공을 세운 국군장병과 애국선열을 수없이 만난다.

장세풍 김풍익 중령. 6·25 남침 이튿날인 1950년 6월 26일 의정부까지 내려온 북한군 탱크의 서울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105mm 곡사포로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포병대대장이다. 1965년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부하가 실수로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하고 숨진 강재구 육군 소령, 1966년 베트남전쟁 때 날아오는 적의 수류탄을 역시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하고 산화한 이인호 해병 소령도 만난다.

그뿐 아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을지문덕, 계백, 김유신, 서희, 강감찬, 최영, 김종서, 이순신, 권율 장군과 의병장 곽재우, 이강년, 신돌석 등의 용맹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안중근, 강우규, 김좌진, 이봉창, 윤봉길, 홍범도, 지청천 등 항일 광복군 및 독립 운동가도 숱하게 만난다.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6·25 때의 한강 및 낙동강방어전투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 장면에선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장군의 지휘와 병사들의 전투 모습 및 함성, 포성(砲聲)과 칼 부딪치는 소리, 북소리 등 음향효과는 실전(實戰)을 방불케 한다. 시대별 전투복과 무기 발전 과정 등도 어린이들의 흥미를 돋우는 볼거리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선열들이 수많은 오욕과 외침(外侵), 국난의 역사를 겪으면서 이 땅을 지켜왔음을 전쟁기념관은 증명한다. ‘추모의 공간’에 새겨진 국군과 경찰, 유엔군 전사자들의 끝없는 이름과 ‘무명용사들의 공간’, 학도병 1976명의 학교별 사망자 수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곳은 호전성(好戰性)을 가르치지 않는다.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 자유와 평화의 중요성, 군(軍)의 존재 이유를 배울 뿐이다. 전교조의 왜곡된 교육을 바로잡는 데도 좋다. 정문 조형물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고 쓰여 있다. 오늘은 어린이 무료입장과 선물 제공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꼭 한번 관람을 권하고 싶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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