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리와 장관들의 태평성대

  • 입력 2008년 5월 6일 23시 02분


‘농업식품 생명과학 심포지엄 특강’(4월 23일) ‘시장·군수 농정 워크숍 특강-농어업의 밀물시대’(4월 24일) ‘쇠고기 원산지 합동단속반 발대식’(4월 28일) ‘신정부의 농정방향 서울대 특강’(5월 1일).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을 타결지은 지난달 18일부터 ‘광우병 괴담’의 확산에 놀라 관계장관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2일까지의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동정이다. 협상 이후(以後)의 여론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고심했다면 이런 느긋한 일정을 이어갔을 리 없다. 정 장관 스스로 어제 국무회의에서 “축산농가들의 불만 해소 대책을 마련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문제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줄은 몰랐다. 생각이 짧았다”고 털어놓았다.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에는 “일부 방송이 며칠 전 울산의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발병 사례를 전하면서 ‘유사 인간광우병’이라고 표현한 것은 잘못”이라는 보도 해명자료만 달랑 올라 있다.

두 부처는 이번 쇠고기 협상 및 그 후속 사태와 관련된 주무 부처다. 사태는 인터넷상의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과 촛불시위를 넘어 우리 사회의 신뢰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작 주무부처 장관들의 인식은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주무 장관들이 이 모양인데 다른 부처 장관들이야 오죽했겠는가. 국무회의에서 학생 지도를 강조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나 일부 연예인의 미니홈피 문제를 지적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언도 공허하기 짝이 없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부처 조정기능이 청와대로 넘어갔다 하더라도 한승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해 각 부처를 통할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번 사태처럼 축산농가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안일수록 민심을 읽는 총리의 안목과 내각에 대한 리더십이 절실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총리로 발탁한 것도 그 같은 경륜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총리는 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달 20일 ‘쇠고기 개방’ 관계 장관회의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높다.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행동이 없었다. 이틀 뒤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 포천시의 축산 농가를 방문해 “원산지 표시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강조하자 정부 내에선 원산지 표시 단속 문제가 쇠고기 협상 후속대책의 핵심이 되고 말았다. 이 정부 내각이 이런 수준의 ‘단세포적 쏠림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총리와 장관들은 과연 깨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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