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수역사무국(OIE)은 30개월 미만의 소는 광우병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판정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는 30개월 이상의 소는 광우병위험물질(SRM)을 제거하고 수입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주장을 할 수 있는가. 한 연예인의 뒤틀린 현시욕의 소산으로만 치부하기에는 해악이 너무 크고 깊다.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연예인도 높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공인(公人)이다.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미디어에 의지해 활동을 하는 그들의 언행은 사회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예인들 중에는 김 씨처럼 ‘아니면 말고’식 주장을 유포해 청소년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서도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무너졌다
어디 김 씨뿐일까. 우리 사회는 지금 무책임한 유언비어와 거짓 그리고 미신의 범람으로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미국의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저서 ‘트러스트’에서 “최소한의 신뢰와 정직이 경제생활의 원활한 작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그대로다.
환경이나 식품안전처럼 과학적으로 증명이 어려운 분야에서는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상대에게 무한책임을 지우며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정치적 동기나 의식의 미성숙으로 인해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보태지면 거짓이 사실을 누르고 여론을 지배하게 된다.
정부가 이런 점까지 생각하고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은 실책이다. 그러나 작금의 ‘광우병 괴담’은 그런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우리 사회의 모든 병리학적 증후군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상처를 치유하고, 정직과 신뢰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의 과제가 됐다.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부터 공인의식과 책임감을 새롭게 해야 한다. 대학교수 출신인 박미석 전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재산공개 과정에서 농지 불법 구입이 문제가 되자 허위 자경(自耕) 확인서를 제출한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져선 신뢰사회가 멀다.
그뿐이 아니다. 가장 정직해야 할 대학사회에는 논문 표절이나 중복 게재가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한때 ‘과학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논문 조작은 진실 추구가 생명인 과학 분야에서조차 거짓과 조작이 개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신정아 스캔들은 거짓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시켰다.
지도층-전문가들이 용감하게 眞實 말해야
대선을 흔들었던 BBK 사건도 검찰과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 한 젊은이의 사기행각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문서위조와 주가조작의 귀재나 다름없는 그를 정의의 사도인 양 띄웠다.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감시하고 가려내야 할 사람들이 이를 생산하는 공장 역할을 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우리 사회에서 10년 동안 좌우 이념 대결이 심해지면서 정부의 권위는 물론이고 신뢰할 만한 집단과 세력이 허물어진 것도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확산시키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광우병 괴담’의 혹세무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마디로 사회가 믿을 만한 정보의 출처가 거의 붕괴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언론도 엄격한 검증을 통해 괴담을 걸러내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소설가 복거일 씨 등은 PD수첩 보도와 관련해 방송 보도의 책임성을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포스텍 생물학전문연구센터(BRIC)가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인 양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걱정해 과학적 데이터를 근거로 논쟁을 벌이기 위한 토론방을 연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당당하고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야만 신뢰가 복원될 수 있다. 신뢰를 허무는 거짓의 확산은 망국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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