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싸움의 와중에서 스파르타에 쏠리던 집권세력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티라나투스의 치세가 10년간 계속되던 때였다. 그의 집권 후 아테르타는 정치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소피클레스라는 남자가 ‘티라나투스가 다리를 저는 것 같다’고 말했다가 주변 사람에게 ‘불온한 언동’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불면의 밤을 보낸 그는 도시의 수호신인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언덕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테르타 시민이여, 우리는 압제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새벽잠을 설치던 이들이 신전에 메아리쳐온 이 목소리를 신탁(神託)으로 오인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그렇다. 우리는 압제받고 있는 것 같다”고 외쳤다. 신전 쪽에서 들려온 복수의 목소리는 잠자던 시민들을 깨웠고, 하나 둘씩 도심 광장인 아고라(agora)에 모여들었다. 모인 군중은 시위의 양상을 띠게 됐고, 시위 진압이 강경해질수록 더 많은 군중이 무장했다. 결국 티라나투스는 시민군에 패배한 뒤 난자당한다.
하지만 권력은 티라나투스의 정적(政敵)에게 돌아갔다. 모든 선동의 배후에 그의 정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아테르타는 아테네 편에 섰던 데 대한 보복으로 스파르타에 의해 멸망했다. 나라가 망한 뒤 소피클레스는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칼레파 타 칼라(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군중심리와 유언비어, 선동정치의 이면을 풍자한 이문열의 소설 ‘칼레파 타 칼라’(1982년)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질문 때문이었다. “아빠, 미친 소 얘기 맞는 거예요?”
미디어 다음의 웹사이트 ‘아고라’에선 취임 2개월여밖에 안 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아고라는 원래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도편추방제(오스트라키스모스·질그릇이나 조개껍데기에 이름을 써서 많이 나온 사람을 추방하는 제도)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지던 광장. 벌써 인터넷 공간에선 ‘도편추방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며 융성했던 그리스가 로마에 지중해 패권을 넘겨준 뒤 몰락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직접민주주의의 폐해 때문이라는 게 사가들의 평가다. 직접민주주의는 중우(衆愚)정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선동정치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인터넷의 힘과 효순·미선 사건, 반미(反美) 집회 등에 힘입어 집권한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그 폐해를 눈앞에서 보여준다. 첨단문명인 인터넷이 2500년 전에 사실상 용도 폐기된 제도의 부활에 쓰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원전 493년 아테네의 집정관에 취임한 테미스토클레스는 군항 건설과 해군 증강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는 10여 년 뒤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대군을 살라미스 해전에서 격파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역시 도편추방의 희생자가 됐다. 갈 곳이 없어 페르시아에 몸을 의탁한 그는 ‘아테네와 싸우러 가는 페르시아 해군을 지휘해 달라’는 페르시아 왕의 요청을 듣고는 독배를 들고 자결했다. 그가 죽고 40여 년이 지나 도편추방제는 폐지됐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