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버핏 회장은 많은 말을 했지만 특히 와 닿은 것은 위기 상황이 곧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위기=기회’론이 아닌가 싶다.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 같은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위기 상황이 심각할수록 그만큼 기회도 많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많은 금융회사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고통을 겪으면서 파산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세계 5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파산의 위기에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JP모건이 이를 헐값에 인수했다. 한쪽의 위기는 다른 쪽에는 기회다. 세계경제는 지금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 위기가 절정에 이르며 반환점을 돌고 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멀고 이 길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흥망성쇠가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를 얻은 쪽은 어떻게 해야 할까. 버핏 회장의 답은 “과감한 투자”다. 위기를 두려워해 좌고우면하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선진자본들은 아시아에서 대대적인 기업사냥을 했다. 신용위기에 빠진 알짜 기업들을 헐값에 인수해 큰 이익을 보았다. 이들은 아시아시장의 위기에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제 상황이 역전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반면에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경제권은 건실한 경제로 거듭났다. 더욱이 경상수지 흑자와 유가 상승을 바탕으로 소위 아시아머니와 오일머니가 대규모로 축적됐다. 그리고 이들 신흥자본이 기회를 찾아 선진시장으로 투자되는 양상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기관투자가와 금융회사, 기업들의 투자 활동은 과감한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으려면 ‘위험(risk)’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원래 경제용어로서 ‘위험’이라는 것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다. 위험도가 높은 투자는 높은 위험의 대가로 기대수익률이 높은 반면 위험도가 낮은 투자는 기대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경제의 투자활동은 경제 주체들의 위험에 대한 태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위험을 선호하면 그만큼 투자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만 경제는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역동적인 경제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위험에 대해 관대한 인식을 가졌다고 한다면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는 위험한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경제 전반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기업과 금융 및 정부 부문의 안정지향적, 보수적 경영이 한국경제의 저성장체제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안정성과 건전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나치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제 외환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지금 위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위험은 나쁜 것이라는 전제 아래 도입됐던 제도들은 수정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외환위기를 경험했다. 이제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그 대가를 돌려받아야 하지 않을까. 수업만 받고 그 지식을 써 먹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효율적 투자다. 물론 “기회는 구체적이고 끈질기게 파고들어야만 잡을 수 있다”는 ‘오마하의 현인’의 부연 설명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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