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성 교수의 소비일기]쇠고기 먹지 말자는 말에 콧방귀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8분


《미국에서 10여 년을 살았던 우리 가족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사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먹던 것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만은 분명히 느꼈습니다.

미국에서 비싸고 좋은 쇠고기만 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

오랜 시간 배에 실려 와서 그런가 보다 하는 추측도 해 봤지만, 결국 가격을 맞추다 보니 미국에서 아주 싼 등급의 쇠고기 위주로 수입된다는 기사를 보고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쇠고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식구 열다섯 명의 주말 식탁을 비싼 한우로 채우기는 어렵더군요.

그러다 광우병 파동이 나면서 수입이 금지됐다가 지난해 여름, 자주 이용하는 대형마트에 미국산 쇠고기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값도 한우의 절반이 채 안 되는 데다 광우병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선뜻 사게 되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며칠 지나자 그 코너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 덕분인지 옆에 있던 호주산 쇠고기도, 또 국내산 쇠고기도 값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또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올 예정이랍니다. 하지만 이번엔 예전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다양합니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부터,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람들까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흥분한 남편은 “이제 아예 쇠고기는 먹지도 말자”고 합니다,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콧방귀를 뀌긴 했지만 사실 쇠고기를 사기가 겁납니다. 이 와중에 수입산 쇠고기 대신 한우 소비가 증가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소비자들은 품질의 안전성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군색합니다. 수입이 재개돼도 군인들 식탁에서도 학교 급식에서도, 또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 쓸 예정이랍니다.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니 일단 수입은 하고 선택은 소비자들에게 맡기면 된다’는 사설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정부는 표시를 통해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정보를 제대로 보고 선택하라”는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는 수입육이 한우로 둔갑할 수는 없다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고, 수입육에도 최소한의 안전성이 담보된 상황에서나 건넬 수 있는 조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입니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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