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가 이어지다가 경품 규제가 화제에 올랐다. ‘경품을 규제하면 과연 소비자 후생이 증대될까’는 필자가 공정위를 출입하던 15년 전부터 의문을 품어 온 주제였다.
‘경품을 주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은 쉽고 단순하다. 경품 받고 기분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 반대로 ‘경품이 소비자 후생을 해친다’고 주장하려면 꽤 복잡한 논리를 동원해야 한다. 대충의 골격은 이럴 것이다.
“경품 비용은 원가에 반영된다. 만약 경품이 순전히 운(運)에 따라 배분된다면 경품행사를 하건 말건 전체 소비자의 이익은 동일하다. 그러나 경품에 민감한 계층이 따로 있고 그들이 경품을 받기 위해 애쓴다면 전체 소비자 수준에서 추가 비용이 지출된다. 이른바 ‘경제적 순손실’이다. 이는 전체 소비자의 후생 감소를 뜻한다.”
좀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쉽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정부가 경품을 규제하려면 훨씬 복잡한 전제조건들이 한꺼번에 충족돼야 한다.
첫째, 경품 제공 비용이 미리 원가에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가격 책정 당시엔 경품 계획이 없었고, 계획이 나중에 세워졌다면 소비자 후생이 침해될 리 없다. 따라서 정부가 ‘경품 비용이 원가에 반영돼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기업의 가격정책을 세세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경품이 그저 운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경품 민감층에 더 많이 돌아가며, 민감층이 경품을 노리고 추가비용(경제적 순손실)을 지출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셋째, ‘경품 민감층의 추가비용 지출 규모가 행정력을 동원해 억제해야 할 만큼 낭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고 정부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에 요구되는 역량이 점점 커지고 있다.
넷째, 이 밖에 경품을 받는 사람과 못 받는 사람 간의 형평성, 공정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소비자의 특성 및 지불능력에 따라 가격을 차별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교과서는 잡지 등에 붙어 있는 할인쿠폰이나 극장의 학생 할인 등을 가격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다. 할인 민감성에 따른 가격차별이 괜찮다면 경품 민감성에 따른 가격차별은 규제되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공정위 공무원들이 이런 고민을 안 할 리 없다. 백 위원장은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도 했다.
정부 규제에 대해 비슷한 번민을 많이 한 선배 공무원이 있다. 그의 어법을 옮겨본다.
“시장 실패는 있기 마련이며 이를 교정하려는 것이 정부 개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장에 대해 정부가 가진 정보는 민간보다 부정확하다. 이 때문에 정부 개입은 엉뚱한 결과를 빚곤 한다. 비용도 꽤 든다. 가능하면 시장에 맡기라. 개입하고 싶은 욕구를 정 못 참겠거든 자신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라. 모든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그냥 가만있는 편이 낫다.”(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