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의 뜻이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이 사태는 한국민주주의에 쓴 약이 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내’게 직결된 사안에 대한 각자의 능동적 참여가 민주주의를 살리기 때문이다. 정치의 형식화와 관료적 타성에 대한 경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 합리성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참여는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전체적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보 공개와 국민 설득 과정 없이 졸속으로 타결한 쇠고기 협상이 화를 부른 것이다. 광우병 사태는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한국 관료의 논리가 1년도 안 돼 180도 바뀜으로써 초래된 총체적 신뢰의 위기에서 발원했다. 이번 파동과 관련된 대중의 불신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동물성사료 금지조치 내용을 잘못 해석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정부 무능과 일부 언론 선정보도
정부가 깔아놓은 무능과 불신의 온상 위에 일부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편승했고 유언비어성 괴담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공권력으로 보도를 통제하고 괴담을 뿌리 뽑겠다는 발상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반복된 이명박 정부의 경박함과 ‘민심 역주행’에 대한 불만이 쌓인 가운데 먹을거리라는 뇌관이 폭발한 것이 광우병 사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국정 전반에 관해 전면적 재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행로는 앞으로도 위기와 혼란의 연속이 될 것이다.
나는 이번 미국 쇠고기 협상이 광우병 원인 물질인 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한 월령 30개월 미만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 현지의 사료 정책과 도축 과정, 쇠고기 이력 추적제, 항생제 투여 정도, 광우병 검사 소의 수, 프리온 관련 질병 관리체계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개입과 참관도 필수적이다.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는 측은 동시에 한우에 대해서도 위와 동등한 조치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을 때 이들의 문제 제기는 국민 건강권 지키기의 대의와 행위 일관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 광우병 통제국가(3개 등급 가운데 2등급 국가)인 데 비해 한국은 광우병 미확인국(등급 외 국가)이기 때문이다. OIE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상위의 국제 기준을 국내에도 같이 적용하는 것이 소비자의 생명권 수호를 위해서나 우리 축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광우병 파동은 쇠고기 협정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된 경제 논리로만 접근한 이명박 정부의 독주로부터 비롯되었다. 성급히 진행된 쇠고기 협상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며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판단 자체는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시민들의 불안감에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지금처럼 부풀려져서는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동물성 사료를 금지해 소를 키우고 광우병 위험군에 속하는 소의 SRM을 제거한다면 어느 나라의 쇠고기라도 비교적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과학자와 전문가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 유리된 공포감
광우병 사태는 우리 사회 문화 정치의 복합성을 선명히 보여 준다. 한국민주주의의 역동성도 입증되었지만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는 공론장의 취약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는 인간의 존엄을 떠받쳐 주는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객관적 증거로부터 유리된 불안과 공포감의 확산은 자기 파괴적이다.
과학적 사실과의 대면에 인색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동력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열정은 소중한 것이지만 이성의 한계를 넘어설 때 위태로워진다. 억측과 과장이 아니라 엄정한 사실의 존중만이 광우병 파동의 해법이며 처방이다. 냉철한 논리와 합리성에 의거해 비판을 실천하는 사회만이 성숙한 사회인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객원논설위원
pjyoon5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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