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映振委長 자리싸움과 한국영화의 위기

  • 입력 2008년 5월 15일 02시 58분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홍릉길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새 위원장 후보를 추천하기 위한 면접이 열렸다. 여기에는 강한섭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이강복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조희문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 최진화 전 MK버팔로 사장, 하명중 영화감독 등 5명이 참가했다. 영진위는 15일 이 중에서 3명을 임명권자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추천한다.

영화계에서는 이강복 조희문 씨 등을 유력 후보로 손꼽고 있다. 하지만 후보들을 둘러싸고 최근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논란은 영화 산업 진흥이라는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영화인협회, 한국영화배우협회, 한국영화감독협회 등 9개 영화관련 단체는 면접 전날인 13일 성명을 내고 “최고경영자(CEO) 출신은 영화 산업 현장으로 가라”며 “(지난 정권에서) 좌파 영화인들과 투자 배급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유지하며 동업자 관계를 형성한 인물이 CEO라는 명분으로 위장 전입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도 “영화 산업 내부의 인맥에 연루돼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훼손할 수 있는 CEO 출신 인사는 배제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12일 발표했다. 이들이 말하는 CEO 출신 후보들은 이강복 최진화 씨다.

조희문 씨를 거부하는 이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한 영화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조 씨가 영진위를 이끄는 것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이들이 많다”며 “그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찬성했던 전력도 반대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진위는 문화부로부터 영화 산업 지원 역할을 위임받은 기구다. 올해 영화 지원 예산은 589억 원으로 지난해 439억 원보다 150억 원 늘어났다. 이 예산은 영화 산업 진흥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위원장 후보들의 역량에 대한 영화계의 평가는 묻혀버렸다. 지난 정권에서 누렸던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과 새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들 간의 권력 다툼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사라진 한국 영화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영진위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논의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산업은 위기”라는 말이 구문(舊聞)이 된 까닭을 짐작할 만하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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