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귀한 줄 모르는 군사정권
라티프 기자의 사진은 지난해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 때 찍은 것이다. 진압 군인이 밀치고 넘어지면서 달아나는 시위대를 뒤쫓으며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군인 뒤쪽에는 막 총을 맞고 쓰러진 남자가 오른팔로 사진기를 들고 시위대를 찍으려는 동작을 하고 있다. 이 남자는 AFP통신의 일본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長井建司·당시 50세) 씨다. 그는 곧 숨졌다. 나가이 기자의 사망 순간을 포착한 이 사진으로 라티프 기자는 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얀마의 언론인이 본보에 보내온 사진은 초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참상을 보여준다. 10세 내외로 보이는 3명의 어린이가 밧줄로 서로의 팔을 함께 나무에 묶은 채 익사한 모습을 담고 있다. 아마도 형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나무 위로 올라가 서로를 묶었지만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쓰러진 나무 주변에는 다른 아이 4명의 익사체도 보인다. 모두 아직 빠지지 않은 물속에 반쯤 잠겨 있다. 애잔한 슬픔과 함께 분노가 끓어오르게 하는 사진이다.
한 나라가 있다. 스스로 밝힌 인구는 5700만 명이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달 1일 업데이트한 국가별 통계에는 4776만 명으로 나올 정도로 모든 게 부정확하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7배 가까이 되고 석유 천연가스 주석 아연 구리 목재 등 자원이 풍부하다. 한때 쌀 수출 세계 1위였을 정도로 토지가 비옥하고, 긴 해안선을 끼고 있어 관광자원도 무궁무진하다. 이런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도 작년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00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위생 수준이 지극히 열악해 질병에 노출될 위험도가 매우 높다. 바로 미얀마다.
이 나라가 이토록 뒤처진 것은 정권 탓이 가장 크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얀마는 1962년 쿠데타 이후 기나긴 군부통치하에 놓여 있다. 군사정부가 내세운 ‘미얀마식 사회주의’는 이미 파탄이 났는데도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1990년 자유선거에서 야당이 이겼지만 군사정부가 모든 것을 무효화해 국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작년에는 하룻밤 사이에 휘발유 값을 67%, 천연가스 사용료를 4배 올려 민중시위가 일어났지만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런 정권이니 국민의 생명이 귀한 줄 모른다. 거대한 사이클론이 미얀마로 접근하고 있다는 경고가 인도 기상국으로부터 41차례에 걸쳐 날아왔지만 주민 대피 등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사망 실종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군사정부는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해 정권 연장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의 지원 제의에 대해서도 현금과 물품만 받고 구호인력은 거부했다. 유엔은 150만 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기아와 질병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사회,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나
이런 나라,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원초적 기능마저 포기한 이런 정권도 주권이라는 이름 아래 용인돼야 하는 것일까. 미 타임지는 얼마 전 국제사회 일각에서 강제지원론이 대두하기 시작했다고 전했고 월스트리트저널에는 미얀마를 침공해서라도 구호품을 전달해야 한다는 기고문이 실렸다. 참사 현장 어디에서도 정부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정치나 군사독재는 잊어버리자. 고통을 당하며 죽어가는 주민들을 돕는 데 모두 나서자”고 호소했지만 정작 제 나라 독재정권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이런 나라에서 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역만리 아무 상관없는 한국 기자가 갑갑해서 적어본다.
김상영 편집국 부국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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