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우리 집 앞은 4차로인데 내 차가 길 건너편에 주차돼 차를 타기 위해서는 그 길을 건너야 한다. 출근하기 위해 여동생과 함께 길을 건너다 내 목발이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나는 길 위에 큰 대(大)자로 널브러지고 말았다. 놀란 동생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사이에 나를 가운데에 두고 좌우 양쪽으로 차들이 정지했다. 동생은 겨우 나를 일으켜 앉히고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였다. 자동차 한 대가 요란스럽게 경적을 울렸다. 자기의 진행을 방해하니 빨리 없어지라는 경고였다. 동생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 운전자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오랫동안 경적을 울렸다. 그때 맞은편 자가용 운전자가 내려와 동생을 도와 나를 일으켰다. 경적을 울렸던 그 차는 그 틈을 타서 잽싸게 떠났다. 낡은 포텐샤였고, 라 3××× 번호판이었다.
널브러진 내게 경적 울려댄 포텐샤
난 별로 큰 상처 없이 일어나 자가용 운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그 포텐샤 운전자가 생각났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 저렇게 길바닥에 넘어져 일어서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고 슬플까’ 하는 측은지심도 없었을까.
어젠 중증의 장애를 가져서 서강대와 대학원까지 6년 내내 어머니와 함께 학교를 다닌 진석이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결석은 물론 지각 한 번 없이 컴퓨터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올봄 졸업하자마자 국내 최고 인터넷 기업 N사에 당당히 합격해 우리 모두 함께 기뻐했었다.(진석이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일간지나 방송에서도 이미 많이 다루어져서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서강대 근처에서 6년을 산 진석이네는 경기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회사 근처로 가기 위해 분당과 인접 지역인 광주의 H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아는 이웃이 없는 곳에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 아침에 진석이를 출근시키기 위해 휠체어에서 차로 옮겨 태우는 게 문제였다. 덩치가 있는 진석이에 비해 어머니는 몸집이 작고 왜소해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경비원이 도와줘서 진석이는 며칠 동안 무사히 출근할 수 있었다.
한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전체 주민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경비원이 진석이 개인의 고용인처럼 진석이를 돕는다고 불평했고, 관리소 측에 진석이 돕는 일을 더는 계속하지 말라는 탄원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진석이 친구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난 참으로 황당했다. 물론 아파트 주민 전체가 비용을 대서 고용한 경비원이지만, 그래도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도와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해야만 했을까. “내가 저 어머니라면 장애인 아들을 차에 옮겨 태우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울까”라고 생각해줄 수는 없었을까.
나나 진석이나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넘어지면 도와줘야 일어날 수 있고, 혼자 힘으로는 휠체어에서 차로 옮겨 탈 수도 없다. 하지만 몸으로는 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 또는 지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장애인 아픔 나눌줄 아는 사회로
세상일을 누가 아나―내가 나만의 재능과 노력으로 그 포텐샤 운전자를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진석이가 훌륭한 인터넷 프로그램을 개발해 H아파트의 주민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론 지금 당장 나의 편리, 나의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내가 감히 그 포텐샤 운전자에게, 광주 H아파트 주민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우리 학생들에게 ‘내가 만약 저 사람이라면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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